HBM 소외에…외국인 5천418억원 '팔자' 다시 순매도 랠리
트럼프발 칩스법 불확실성·규제 경계감 '첩첩산중'
삼성전자 실적 하락 (PG) |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한때 10만원을 바라보던 삼성전자[005930] 주가가 5만원대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11일 또다시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천원(3.51%) 하락한 5만5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22년 9월 30일(5만3천10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역대 최고가는 지난 2021년 1월 11일에 기록한 장중 9만6천800원, 종가 9만1천원이다. 최고가와 비교하면 40% 넘게 하락한 셈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외국인이 끌어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9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 장장 33거래일간 삼성전자를 순매도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12조9천339억원에 이른다.
외국인은 10월 28일과 29일 단 이틀 각 100억원 미만의 순매수를 기록한 뒤 10월 30일부터 다시 매도 행진을 시작, 이날 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이날 순매도 규모는 5천418억원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부진은 인공지능(AI)의 핵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000660]가 HBM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HBM 밸류체인에서 소외되며 후발 주자의 위치가 됐다.
김광진 한화[000880]증권 연구원은 "내년 메모리 시장의 수요 디커플링이 심화하면서 업황이 둔화 구간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모멘텀이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며 "HBM 시장에서 경쟁사와 격차를 좁히는 것이 중요한데, 낙관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과거 메모리 업 사이클에서는 선행 투자를 통해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를 먼저 흡수하는 삼성전자가 가장 유리했으나 AI와 관련한 특정 수요만 좋고, 그 외 IT 수요가 좋지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매출 기여도가 낮은 성숙 공정 캐파는 오히려 원가에 부담"이라며 "달라진 시장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반도체 섹터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투자 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칩스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TSMC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공장을 짓고 그 대가로 보조금을 받기로 했는데, 아직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은 칩스법과 같은 직접 보조금보다 관세가 반도체 산업 진흥에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이어서 계약 조건, 계약의 성사 여부, 계약 시 보조금 지급 시기 등과 관련한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을 견제하는 만큼 대만 TSMC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기조가 바뀌게 되면 한국 반도체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TSMC에 고성능 반도체의 중국 공급 중단을 명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히려 시장에는 중국향 수출에 대한 규제 확산 경계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날 코스피에서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3.94%), 한미반도체[042700](-6.48%) 등 반도체 업종이 동반 약세를 보였다.
증권업계에서는 기술 경쟁력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올해 주가 부진은 HBM을 엔비디아로 공급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 제품 품질 관련 이슈가 전 제품에 걸쳐서 제기된 영향"이라며 "이와 관련된 문제를 내년에는 해결할 수 있는지가 주가 반등 및 수익성 개선, DS 사업부의 경쟁력 회복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지금은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는 구간"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새로운 질서가 온다고 하더라도 결국 반도체에서는 무엇보다 기술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기회를 되찾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력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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