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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신병주의역사저널]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 상주 존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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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유학자들이 나서 시설 세워

287년간 경로잔치 열어 지역 화합도 앞장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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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는 의료 시설의 중요성과 의료진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필자는 지난주 상주시에 소재한 국가유산 존애원(存愛院)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는 행사에 참석하였다.

1599년(선조 32) 발의가 되어 1602년에 설립된 존애원은 사설 공공의료 시설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많은 백성이 기아와 질병으로 힘든 시기에 상주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직접 나서서 백성을 구제하는 의료 시설을 세운 것이다. 존애원은 경북 상주시 청리면 율리에 있는데, 상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9㎞ 지점이다. 앞으로는 청리천이 병성천으로 흘러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 등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료기관들이 존재하였다. 왕실 의료기관으로 궁궐 안에 설치한 내의원(內醫院), 관리들을 전담하는 전의감(典醫監),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혜민서(惠民署) 그리고 굶주린 백성들의 재활과 더불어 전염병이 유행하면 격리 시설로 활용되었던 활인서(活人署)가 있었다. 이들 의료기관이 국가 주도의 의료기관이었다면 존애원은 지방에 설치한 사설 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존애원은 김각(金覺), 성람(成濫), 이전(李㙉), 이준(李埈), 강응철(姜應哲), 김광두(金光斗), 정경세(鄭經世) 등 상주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들이 뜻을 모아 창설한 것으로 13개의 문중이 참여하였다. 류성룡의 문인 정경세는 지역 양반들에게 의료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으며, 의술에도 능했던 유학자 성람은 존애원의 초대 주치의 역할을 하였다. 존애원의 명칭은 송나라 유학자 정명도(程明道)가 말한 ‘존심애물(存心愛物)’, 즉 ‘마음을 지키고 길러서 만물을 사랑한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정경세와 이준의 문집에는 1602년에 의국(醫局) 존애원을 세웠다는 기록이 보이며, 조선 후기의 학자 송시열이 쓴 정경세 행장에는 ‘동지들과 의약을 갖춰 놓고 고을의 병자들을 구제하면서 정명도 선생의 말을 취하여 존애원이라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상주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북상 침입로였던 까닭으로 전쟁에 의한 피해가 특히 컸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전란 직후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지역 공동체가 힘을 합하여 존애원을 세운 것이었다.

존애원은 의료기관의 역할 이외에도 1607년부터 1894년까지 287년간 경로잔치인 백수회(白首會)를 통해, 지역의 어른들을 공경하고 지역의 화합을 유지하는 행사들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지방에서는 이례적으로 탄생한 사설 의료기관인 존애원의 존재와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상주시를 중심으로 최근 진행되고 있지만, 보다 체계적으로 이를 확산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

당시에도 ‘음덕(陰德)이 사람들에게 미친 것이 넓다’는 평가를 받았던 존애원의 설립과 운영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안들, 즉 존애원의 존재와 가치를 설명하는 교육과 영상 프로그램, 의료 및 사회봉사와 관련한 전시물 배치, 설립에 참여한 인물의 유적지에 대한 현장 탐방 등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는 상징 공간으로 존애원이 주목받게 되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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