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주 소호·모춘이 말하는 ‘무비랜드’
극장 ‘무비랜드’를 만든 소호(왼쪽)와 모춘은 “전반적으로 나무를 많이 써서 푸근한 도서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운이 좋은 날엔 강아지 인턴 부기도 만나볼 수 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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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석 단관 극장에 티켓 값은 2만원, OTT로도 볼 수 있는 구작(舊作)을 튼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한 이 영화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극장 ‘무비랜드’는 독특한 실험으로 요즘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배우 이제훈·박정민 등을 큐레이터로 섭외하고, 반스·비너스 등 브랜드 협업 문의도 쇄도한다. 극장주 소호(38)와 모춘(41)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무비랜드는 한 달에 한 명씩 큐레이터를 선정해 그 사람의 인생 영화 4~5편을 상영한다. 11월엔 배우 이제훈이 ‘초록 물고기’ ’시네마 천국’ ‘라라랜드’ 등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5편을 골랐다. 젊은 세대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명작들이 특히 반응이 좋아 ‘시네마 천국’은 전 회차 540석이 모두 매진됐다.
11월 무비랜드의 큐레이터로 선정된 배우 이제훈이 자신이 선정한 영화들을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Mo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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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는 영화관”이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소호는 “신작은 매달 어떤 영화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주체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했고, 우리가 궁금한 사람을 섭외해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보기로 했다.” 모춘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에서 다양한 분을 섭외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달엔 일본의 잡지 편집자를 모실 예정이다. 동경하던 분이라 내한했을 때 숙소에서 2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30분만 얘기를 들어달라’고 들이댔다.”
큐레이터와의 인터뷰도 유튜브 채널 ‘MoTV’에 올린다. 영화에 얽힌 개인적인 일화나 인생에 미친 영향을 물어보면서, 생소한 영화도 ‘입덕’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모춘은 “별로라고 생각했던 영화도, 친구가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듣고 보면 새롭게 느껴지지 않나. 한 사람의 필터를 통해 영화를 보면 더 풍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큐레이터의 소장품을 구경할 수 있는 2층 라운지는 매달 조금씩 풍경이 바뀐다. 이번달엔 이제훈이 입었던 영화 '탈주' 의상, '건축학개론' 콘티북 등이 전시됐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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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값이 비싼 만큼 “깊이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1층에는 키오스크 대신 티켓 부스가 있어 직원이 표를 나눠주고, 2층으로 올라가면 상영 전까지 편히 쉴 수 있는 라운지가 있다. 영화 책·잡지와 굿즈, 큐레이터의 소장품이 전시돼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상영관은 3층. 협소한 공간을 안락하게 느낄 수 있도록 벨벳 천을 씌운 프리미엄 상영관용 의자를 주문 제작했다.
매달 디자이너들이 직접 그리는 상영작 포스터는 빼놓지 말고 챙겨야 할 기념품이다. 옛 극장에서 화가들이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을 내걸었던 풍경을 되살린 것. 소호는 “멀티플렉스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다운 요소를 많이 넣으려고 했고, 그게 저희만의 강점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무비랜드 개관작이었던 영화 '대부' 아트워크. /무비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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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반응이 제일 좋았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아트워크. 영화 속 대사를 따와서 만들었다. /무비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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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석 단관으로 돈이 될까 싶지만 주요한 수익 모델은 기업과의 협업이다. 극장 전체가 커다란 팝업 스토어처럼 변하기도 한다. 지난달엔 속옷 브랜드 비너스와 함께 사랑 영화 7편을 상영했다. 2층에서 비너스 창립 70주년 전시를 열고, 관객은 무료로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예매 오픈 39분 만에 1500석이 매진됐다.
라인프렌즈의 기획자·디자이너였던 두 사람은 퇴사 후 디자인 브랜드 ‘모베러웍스’ 제작기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팬덤이 생겼다. 극장을 만들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직원들이 직접 영사기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극장 로고를 디자인하다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 등 2년간의 준비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관객들이 붙여준 별명은 ‘수제 영화관’. 모춘은 “저희 브랜드가 멋있어서라기보다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처절한 이야기에 공감해주시더라. 마찬가지로 저희 극장의 키워드도 결국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다.
소호 역시 “극장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서비스로 조금 더 얹어준 팝콘, 작은 기념품처럼 의외로 관객들은 사소한 것에 감동하더라. 대단한 전략보단 이 공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직원들의 진심을 관객도 알아봐 준 게 아닐까 싶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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