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생활체육 천국’ 정책 추진… 2237억 원 투입해 체육시설 확충
강-바다 인근에 달리기 거점 조성… 러너 위한 기초훈련 프로그램 지원
물품 보관함-샤워장 등 설치 검토… 동네목욕탕과 협업도 진행하기로
9일 오후 김민훈 씨(왼쪽)가 달리기를 마친 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수영만요트경기장 좁은 화장실에서 땀을 씻고 있다. 부산시는 달리기 동호인의 훈련 편의를 위해 샤워 시설 등을 갖춘 러너스테이션 2곳을 조성한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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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공간이 생기면 좋겠어요.”
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수영만요트경기장 화장실. 해운대 해변을 따라 송정해수욕장까지 왕복 15km를 달리고 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김민훈 씨(37)가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어 대충 얼굴을 씻은 뒤 양변기 칸에서 속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5개월 동안 달리며 10kg을 감량했을 정도로 러닝에 푹 빠진 그는 달리기 동호인 사이에서 화제인 ‘러너스테이션 조성’을 언급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씨는 “러너스테이션에 운동 후 씻을 수 있는 샤워 시설이 갖춰진다면 전국의 많은 러너가 찾아올 것”이라며 “부산의 러너들이 대중교통이 아닌 차를 몰고 훈련 거점을 찾는 만큼 이곳처럼 주차시설이 충분히 확보된 곳에 지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14만 m²의 넓은 부지에 조성된 수영만요트경기장은 400대 넘는 차량을 무료로 댈 수 있어 밤낮으로 러너들이 찾는다. 하지만 내년부터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 이용할 수 없게 된다.
● 60억 원 들여 러너스테이션 2곳 조성
러너스테이션은 러너들에게 훈련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달리기 훈련 거점에 물품 보관함과 탈의실 등을 설치한 곳이다. 올 5월부터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운영 중인 ‘여의나루역 러너스테이션’이 대표적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9월 25일 부산 동래구 부산시체육회관에서 ’생활체육 천국 도시 부산’ 정책 추진을 위한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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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시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약 60억 원을 들여 2곳의 ‘리버·오션 러너스테이션’을 설치한다. 앞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9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2026년까지 2237억 원을 투입해 ‘생활체육 천국 도시 부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이 마음껏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체육시설을 확충하는 내용 등이 핵심으로 담겼는데, 여기에 러너스테이션 조성 계획이 포함됐다.
현재 러너스테이션 입지 등을 결정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시는 수영강이 인접한 부산도시철도 2호선 민락역에 ‘리버 러너스테이션’, 바다가 가까운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역에 ‘오션 러너스테이션’을 설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 왔다. 두 곳 모두 부산시가 활용할 수 있는 도시철도 역사 내 유휴공간이 넉넉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시는 설계비와 공사비 등 26억 원을 들여 역사 내 132m²(약 40평) 공간에 러너스테이션을 짓고, 연간 4억 원을 들여 러너들을 위한 기초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탈의실 등의 시설을 두는 것 외에도 다양한 러닝 코스가 안내된 대형 멀티미디어 시설도 설치한다. 부산의 신발 제조업체에서 생산한 러닝화를 대여하는 부스도 운영할 예정이다. 시는 부산시민공원이나 부산항친수공원 등에도 러너스테이션을 조성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 샤워 시설 검토… 동네 목욕탕과 협업도 추진
러너스테이션 내 샤워 시설을 갖추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 여의나루역 러너스테이션의 경우 샤워 시설이 없어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공공시설에 샤워장을 설치하면 운동하지 않은 노숙자 등이 찾을 수 있다”며 “달린 거리를 인증한 이들에게만 샤워장을 개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목욕탕을 달리기 문화 확산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목욕탕이란 뜻의 ‘센토(錢湯)’와 달리기를 뜻하는 ‘런(Run)’의 합성어인 ‘센토런’이 유행 중이다. 목욕탕이 러너의 짐을 맡아주고 달린 뒤 목욕할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 시는 목욕탕에 예산을 지원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 러너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 침체한 동네 목욕탕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정용각 부산외국어대 사회체육학과 명예교수는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부산시의 정책 추진이 시설 조성에만 집중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시민에게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문 지도자를 어떻게 배출할지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문수 동의대 경기지도학과 교수는 “공청회를 열어 러너스테이션의 입지와 운영 방향 등에 대한 시민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시는 부산육상연맹 등과 함께 올해 말까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러너스테이션 조성 방안을 결정한다. 내년 초 실시설계와 입찰을 거쳐 12월까지 1곳의 러너스테이션 문을 연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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