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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화려하게 반짝이는 ‘쇠맛’ 패션… Y3K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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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NOW]

3000년대를 배경 삼는 스타일… 메탈릭한 질감의 소재 내세워

2025 봄-여름 컬렉션에 다수… 디지털 반영한 미적 패러다임 제시

동아일보

럭셔리 브랜드들은 다가올 2025 봄·여름 컬렉션에 Y3K 스타일을 다수 선보였다. 얼굴의 반을 뒤덮은 메탈 헤어피스와 광택이 흐르는 슬립 드레스를 매치한 보테가 베네타(왼쪽 사진),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짠 실버 주얼 장식 보디 슈트를 선보인 크리스찬 디올(가운데 사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버 체인 장식으로 뒤덮은 드레스로 실험적 스타일을 표현한 알렉산더 맥퀸(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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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세기말 감성을 대변하던 Y2K가 지고, 이제는 Y3K 시대가 도래했다. Y3K는 ‘Year 3 Kilo’의 합성어로, 무려 300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을 뜻한다. 혀끝에 닿으면 아릿한 전율이 이는 일명 ‘쇠맛’으로 불리는 패션이 패션계에 포착된 것. Y3K 패션은 메탈릭한 질감의 신소재를 내세워 쿨한 무드를 지향한다. 사이버 트럭을 타고 고층 빌딩 사이를 달리는 보디슈트 차림의 사이버 전사 이미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를 예언하는 Y3K 트렌드를 그리 낯설게만 볼 것은 아니다. 새천년이 도래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더욱 그럴 터. 20세기 말 전 세계를 공포로 밀어 넣은 밀레니엄 버그 시절,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틈타 변화와 혁신을 꿈꾸던 ‘사이버’ 키워드는 패션은 물론 음악과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이미 한 차례 침투한 바 있다.

1999년 ‘몰라’를 외치며 사이버 여전사 스타일을 내세운 가수 엄정화는 눈이 시린 형광색 보디슈트에 미래적 스타일의 헤드폰을 쓴 채 어딘지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춤사위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사이버 펑크 세계관을 구현한 가수는 또 있다. 가수 이정현은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테크노 사운드를 받쳐주던 화려한 메탈 소재 드레스와 독특한 새끼손가락 마이크, 비녀 형상을 한 주얼 장식 등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줬다. 영화계는 또 어떤가. 현실과 가상의 게임 세계를 오가며 판타지를 자극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배우 임은경은 미래에서 타임슬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상은 국내 하이엔드 브랜드 ‘파츠파츠’를 이끄는 디자이너 임선옥이 기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포스터에 담긴 과감한 메탈 소재의 톱과 스커트 셋업은 기술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

Y3K 트렌드는 K팝 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데뷔 초부터 멤버들과 가상 공간의 아바타가 하나의 그룹으로 활동한다는 세계관을 구축한 걸그룹 에스파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발표한 미니 앨범 ‘Whiplash’ 티저를 통해 한층 강력해진 쇠맛 패션을 선보였다. 보디라인을 가감 없이 드러낸 커팅 톱과 쇼츠, 팔다리를 휘감은 메탈릭한 주얼리, 미래적인 형태의 고글 선글라스 등 다양한 쇠맛 스타일링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새 싱글 ‘Rockstar’를 발표한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도 서클 이어링과 체인 네클리스, 볼드 레이어드 링 등 반짝이는 헤비 메탈 액세서리를 가미해 Y3K 스타일을 연출했다.

기술과 아트의 결합을 중시하는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 몬스터는 걸그룹 앨범이나 콘셉트 포토에 단골로 등장한다. 올 7월에는 패션 브랜드 뮈글러와의 협업 컬렉션을 공개했다. 크롬 장식이 돋보이는 기하학적인 실루엣의 고글 선글라스는 에스파의 미니 앨범에도 등장하며 사이버 펑크 콘셉트를 충실히 표현했다.

다가올 2025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도 Y3K 무드는 두드러진다. 매 시즌 플라스틱과 금속 조각 등을 활용한 실험적이고 미래적인 스타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파코 라반을 필두로 메탈릭 질감의 드레스 행렬을 선보인 릭 오웬스, 굴곡진 보디라인을 강조한 골드&실버 톤 피스들로 우아함을 살린 스키아파렐리가 트렌드를 따랐다. 짙게 깔린 안개를 배경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 알렉산더 맥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버 체인 장식으로 뒤덮은 드레스로 인간의 강인한 형상을 재현했다. 발렌시아가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높고 끝없는 미래 도시를 연상시키는 길고 수직적인 실루엣의 메탈 피스들을 쏟아냈다. 보테가 베네타는 얼굴의 반은 뒤덮은 메탈 헤어피스에 광택이 흐르는 슬립 드레스를 매치해 탐험가다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금속처럼 단단한 헤어핀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준야 와타나베,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짠 실버 주얼 장식 보디 슈트를 전면에 내세운 크리스찬 디올, 길게 늘어뜨린 메탈 프린지 톱에 슈트 팬츠를 매치해 쿨하고 세련된 무드를 연출한 스텔라 매카트니까지 한 편의 흥미진진한 SF 영화를 보는 듯했다.

패션 전문가들은 Y3K가 주목받는 배경으로 스마트폰, 인공지능(AI), 로봇 등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첨단 기술을 꼽는다. Y2K가 과거 복고 감성을 불러일으켰다면 Y3K는 디지털 시대와 미래 감각을 반영한 새로운 미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어딘가를 향유하고 있을 2024년의 우리가 3000년대 이후의 삶을 가늠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안한 시대에서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2000년대를 지나왔던 것처럼, Y3K 트렌드가 어떻게 재해석되어 무대를 이끌어 나갈지 지켜볼 가치는 있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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