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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이인숙의3A.M.] 머스크 웨이가 ‘트럼프 권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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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미디어 등 총동원… 공화당 베팅 성공

정부효율부 수장 꿰차고 규제 쥐락펴락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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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보내던 마이클 조던은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첫 흑인 상원의원에 도전한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거절했다. 그리고 유명한 이 말을 남겼다. “공화당 지지자들도 스니커즈를 신는다.” 그는 흑인 사회로부터 이기적이라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조던은 현역 시절 내내 정치나 사회문제와 거리를 뒀다.

그는 훗날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에서 “스포츠를 하는 순간 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농구를 하는) 내 능력에만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것도 진실의 일부이겠지만, 이제 막 성공한 농구선수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의 결과였을 것이다. 처신에 따라 정부나 여론의 사정권에 들 수 있는 기업, 연예인, 저명인사들이 으레 선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적·사회적 의사표현이 더 경직된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올해 미국 대선에서 완전히 다른 길로 갔다. 정치 기부가 제도화된 미국에서 기업과 부자들이 대선 캠프에 거액을 후원하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빌 게이츠처럼 정치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양당과 모두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거나(게이츠는 이번 대선은 다르다며 막판에 해리스 지지를 선언했다), 공화당의 돈줄 코흐 형제나 민주당의 큰손 조지 소로스처럼 한쪽을 선택하고 돕지만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번에 기업이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던 경계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는 돈, 플랫폼과 미디어, 네트워크 등 자신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직접 캠페인을 뛰었다. 기업과 정치의 관계에서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모델이다.

머스크의 행보가 오른쪽을 향한 것은 좀 되었지만 올해 3월만 해도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5월에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그러다 때가 왔다. 7월13일 트럼프가 유세 도중 암살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머스크는 사건 발생 1시간여 만에 X에 트럼프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영상과 함께 지지 선언을 올렸다. 이후 그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J 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강력히 추천했다. 또한 재빨리 트럼프를 도울 정치조직을 꾸렸다. 머스크의 슈퍼팩 ‘아메리카 PAC’를 통해 머스크의 돈 1억3000만달러가 트럼프 캠프에 수혈됐다. 아메리카 PAC는 수백명을 고용해 경합주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지상전을 벌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들은 1100만 가정을 찾아다니고 홍보 우편과 디지털 광고를 보냈다. 막판 경합주에서 유권자들에게 매일 100만달러씩 쏜 사실상 ‘매표’ 프로모션도 여기서 진행했다.

머스크의 지지 선언 후 X는 캠페인 확성기로 변모했다. 머스크의 X 게시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주장, 소문, 음모론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 언뜻 정신사나워 보이지만 여론을 장악하고 선거 부정 내러티브를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8월에는 트럼프와 X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고, 생성형 AI 그록은 혐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무제한적 딥페이크 도구였다.

투자 위험이 컸던 만큼 수익은 막대하다. 11월 6일 트럼프가 승리 선언 연설을 하며 ‘공신’을 호명할 때 러닝메이트 J D 밴스, 공동선대위원장 수지 와일스와 크리스 라시비타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머스크다. 테슬라 주가가 폭등했다. 두 사람은 지난 주말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밥을 먹었다.

머스크가 이번 베팅으로 연방정부가 테슬라, 스페이스X, X에 진행 중인 조사, 소송 등 19건을 한 방에 해결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가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에 내정한 만큼 수많은 규제가 그의 손에 좌우될 것이다. 머스크의 세계에서는 이해상충이라는 윤리도 플랫폼의 사회적 책무도 무용해 보인다. 궤도를 벗어난 머스크 웨이가 트럼프라는 문제적 권력을 만났다. 수많은 전례없음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인숙 플랫폼9와4분의3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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