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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투데이 窓]단통법 폐지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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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소위 단통법이라 약칭하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국에서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폐지하자는 논의는 매우 이례적인데, 이 법을 폐지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더구나 여야, 정부 모두 단통법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정부는 1월부터 단통법 폐지를 천명했고, 여당은 6월, 야당은 10월에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요즘처럼 정부,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법폐지를 의기투합한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폐지론의 근거는 단통법이 경쟁을 막고 있어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부담이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단통법 폐지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단통법 폐지도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폐지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단통법은 가입 유형, 구입 시기·장소 등에 따라 보조금 차이가 너무 커서 이용자 간 차별이 발생하고, 빈번한 단말기 교체로 인한 과소비, 자원 낭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2014년 제정되었다.

어쨌든 법시행 이후 누구에게나 동일한 지원금이 적용되면서 이용자 차별이 완화되고, 선택약정할인 도입으로 합리적인 소비가 정착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다만 보조금 수준이 감소하고 경쟁이 줄어들어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 특히 단말기 구입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처럼 통신비에는 통신요금뿐만 아니라 단말기 구입 비용도 포함된다. 통신 서비스요금은 전반적으로 인하되었으며,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품질 대비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나, 단말기 구입 비용이 계속 증가하여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통신비 추이를 살펴보면, 2014년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비용은 2013년 월평균 8,172원에서 2023년 27,945원으로 무려 3.4배 상승했다. 원인은 스마트폰 가격에 있다. 2013년 89만원이던 스마트폰은 2024년 115만원으로 20% 넘게 비싸졌고, 고사양 스마트폰은 200만원을 넘어섰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 Z 폴드 6의 가격은 270만 원이 넘는다.

그렇다면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소비자 부담을 낮출 수 있을까. 지난 3월 정부는 번호이동에 지원금을 더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지원금정책을 시행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신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이통3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마케팅 출혈 경쟁을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통법을 폐지하더라도 경쟁이 활성화되고 소비자가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통신사가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단통법을 폐지하면 법시행 전의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지원금 공시가 사라지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소비자와 그렇지 못한 소비자 간 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차별에 대해서는 사후 규제를 통해 조사하고 제재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당국이 철저히 규제하지 않는다면 단통법 이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시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단통법 폐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오직 폐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비자 후생, 보조금 지급여력이 부족한 알뜰폰사업의 미래, 통신유통업 종사자들의 생계 등 단통법 폐지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폐지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제도적으로 통신서비스는 통신사가 판매하고, 단말기는 제조사가 판매하는 방식인 단말기 자급제 도입, 정부가 추진 중인 중고폰 인증 사업자제도를 통한 중고폰 판매 활성화를 포함한 단말기 시장의 경쟁 활성화 방안 등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단통법에 폐지되어도 경쟁활성화로 인한 소비자 후생 증가라는 통신정책의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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