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자, 의원 보좌관으로 허위 등록 의혹
유럽의회 예산 수십억원 유용 혐의
프랑스 국민연합(RN) 마린 르펜 의원이 13일 파리 형사법원에서 열린 유럽 공금 횡령 혐의 재판 최종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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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실질적 리더이자 유력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 의원이 프랑스 검찰로부터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중형을 구형받았다. RN 당직자 수십 명을 유럽의회 의원 보좌관으로 허위 등록, 이들의 월급을 타내는 방식으로 유럽의회 돈을 가로챈 혐의다. 내년 1~3월로 예상되는 1심 판결에서 검찰 구형대로 선고받을 경우 르펜의 차기 대선 출마가 무산될 수 있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와 프랑스 총선에서 약진하며 급격히 세를 불려온 RN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파리 형사법원은 13일 “검찰이 르펜 의원에 대한 유럽의회 예산 전용 혐의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3년, 5년간의 자격 정지(피선거권 박탈), 벌금 30만유로(약 4억5000만원)를 구형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검찰은 이날 르펜 의원과 함께 기소된 24명의 RN 전현직 정치인과 의원 보좌관, 회계사 등에 대해서도 징역과 벌금형, 자격정지 등을 구형했다. 2015년 예비 조사를 시작한 지 무려 9년여 만이다.
검찰은 특히 “자격정지형의 가집행을 허가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항소할 경우 최종 판결까지 최소 수년이 걸릴 수 있으므로 바로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범을 방지하고 공공질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르펜 등 기소된 RN 정치인들이 유사 범죄를 또 저지르지 말라는 법이 없고, 이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당선되면서 계속 정치활동을 하게 내버려두면 사회 기강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RN은 국민전선(FN) 시절인 지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3년간 유럽의회 예산으로 당직자 월급을 지급해 왔다고 프랑스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또 르펜 의원 등 당지도부가 선거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러한 불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회 측은 피해 규모를 300만유로(약 45억원)로 추산했다. 이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14년이다. RN은 이후 지금까지 약 100만유로(약 15억원)를 상환했다. 동시에 “유럽의회 보좌관으로 등록된 이들이 일부 당무를 겸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법원은 이르면 내년 초 판결을 내놓을 전망이다. 법원이 검찰의 가집행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르펜 의원은 2030년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일간 르몽드 등은 “르펜의 정치생명은 물론, RN의 미래가 법원의 판단에 좌우될 상황”이라고 평했다. 르펜은 현재 프랑스 정치권에서 가장 확실한 차기 대권 후보다. 지난 2022년과 2017년 두 번 연속 프랑스 대선에 나서 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 투표까지 벌였고, 최근 유럽 내 극우 바람을 타고 한층 더 주가를 올려왔다.
RN 측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르펜 의원은 “검찰의 구형은 내 대선 출마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과도한 조치”라며 “프랑스 국민이 원하는 이에게 투표할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도 “이는 르펜 대표와 당의 명예를 훼손하고 RN의 정치적 성장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박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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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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