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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단심’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 근거로…진실화해위, 진실규명 취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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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이 완료되고도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재조사가 진행돼온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75)씨가 군법회의 사형판결문을 들어 보이며 “진실화해위는 빨갱이 사냥을 중단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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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에 대한 종전 진실규명을 취소하는 안건이 다음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 상정된다. 민간인 당사자의 항변권을 보장하지 않고 군인들이 단심으로 내린 사형판결을 ‘적법’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국방경비법 판결문 전수조사도 진행 중이라 진실규명 취소 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한국전쟁 당시 법률적 학살에 대한 구제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은 소식을 전하고 “오늘 오전 김광동 위원장이 주재한 상임위원회에서 다음주 전원위 안건 상정 연기를 요구하다가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위원 설명에 따르면, 오는 19일 제91차 전체위에서는 지난 9월 재조사가 의결된 ‘충남 남부지역(부여·서천·논산·금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 백락정(1919년생)에 대해 최초신청 각하, 재조사 결정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 종전 진실규명 결정 취소 안건이 상정된다. 재조사 결정 이후 유족이 낸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이미 완료된 진실규명 결정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여당 추천 위원들이 모두 찬성할 경우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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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한국전쟁 당시 법률적 학살에 대한 구제방안’ 토론회에서 장완익 변호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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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75)씨는 국가기록원에서 직접 받은 군법회의 판결문을 들어 보이며 “진실화해위는 빨갱이 사냥을 멈추라”고 말했다. 1950년 6월 말 경찰에 끌려간 형을 찾으러 갔다가 행방불명된 백락정은 이후 1950년 7월1~17일 사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는 것이 기존 진실화해위 조사결과였는데, 1951년 1월6일자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재조사가 의결됐다. 판결문에는 ‘사형’이라는 주문과 ‘이적행위 사건’이라는 설명 외에 판결 이유는 공란으로 비어있다. 백남식씨는 “저 같은 피해자가 상당히 많다. 국회와 법률가들이 법률구조 합동지원단을 꾸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토론회는 백락정 사건과 같은 ‘법률적 학살’에 대한 구제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행사로, 더불어민주당 김성회·서영교·이훈기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공동주최했다. ‘법률적 학살’ 또는 ‘사법적 학살’이란 재판의 형식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재판의 실질 요건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조직적 살해행위를 말한다. 군법인 국방경비법은 “군인 및 군속”에게만 적용되는데, 군법회의가 32조(소위 이적죄)와 33조(간첩죄)가 ‘여하(如何)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들어 민간인에게 무리하게 적용해 저지른 학살이 여기에 해당한다. 1기 진실화해위 자료에 따르면, 국방경비법으로 처벌받은 사람 중 1만4454명(94.6%)이 1950~1953년 한국전쟁기에 집중됐고 이 중 31%(4462명)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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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한국전쟁 당시 법률적 학살에 대한 구제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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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제자로 나선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진실화해위 비상임위원)는 “군법회의가 과연 재판이었느냐는 질문에서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면서 “군법회의 ‘판결’을 ‘법원의 확정판결’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불법 체제에 근거한 법적 안정성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이미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고 돼 있는 진실화해위 기본법 2조2항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다. 오 교수는 이어 “군법회의 군사재판에 따른 ‘사법적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군법회의 재판 피해자 재심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법회의 판결을 받은 제주 4·3사건 수형자들의 특별재심에서 무죄를 끌어냈던 장완익 변호사는 “4·3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된 이후 특별법을 통한 개정시에 군법회의 판결을 무효라고 법안을 발의했으나 정부가 판결 무효는 곤란하다면서 특별재심을 대안으로 제시하여 특별법이 개정되었다”며 “한국전쟁기에 국방경비법을 통해 사형판결을 받고 희생된 이들에 대해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해야 한다. 이걸 할 수 없다면 진실화해위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1기 진실화해위에서 조사한 부산 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사건을 예로 들며 “군법회의는 수사와 공소 절차, 계엄사령관 승인과 집행명령 승인 절차가 생략되고 사후에 문서가 조작되는 등 재판이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역시 토론자로 나온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인권침해 재발방지의 시작은 확실한 가해자 처벌에 있다“며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말단이라도 가해 책임을 물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 훈·포장 박탈 등 실제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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