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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맞아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한국 기업들이 일단 투자 축소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 트리플 쇼크(Trump's Triple Shocks)'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크게 △보호무역주의 기치에 따른 공급망 불확실성 △모든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보편 관세 우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CHIPS Act·반도체 칩과 과학법) 같은 미국 투자에 대한 혜택 축소가 대표적인 악재다.
15일 매일경제가 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 중 응답한 110개사에 '미국 대선의 기업 영향 인식'을 조사한 결과, 47.3%가 트럼프의 당선이 경영환경에 부정적이라고 답변했다. 긍정(12.7%) 답변보다 3.7배 많다.
의약품, 조선업 포함 기타 운송장비,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 산업에서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특히 미국 내 생산시설이 전혀 없는 제약업종에서 우려감이 상대적으로 컸다. 부정(71.4%)이 긍정(14.3%)보다 5배 가까이 많았다.
트럼프는 그동안 제약사를 압박했다. 미국 내 제조 시장 회복을 강조하며, 해외에서 생산한 의약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향후 제약사의 약값 인하 압박이 불가피한 데다, 미국 내 생산을 종용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한국은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미국 내 공장은 전혀 없다.
조선업 등 기타 운송장비 업종 역시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66.7%에 달했다. 트럼프가 미국 선박·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해 MRO 산업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무역량 감소로 선박 수요 자체가 침체에 빠질 것을 염려한 대목이다.
트럼프는 "비싼 재생에너지는 부자 에너지, 값싼 화석에너지는 서민 에너지"라며 미국 내 대대적인 석유 시추 프로젝트를 시사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던 국내 조선 업계에는 부정적 요소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산업 역시 62.5%가 어둡게 전망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 미국 내 공장을 착공하는 반도체 기업에 총 527억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에 오는 반도체에 많은 관세를 부과하면 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장을 짓도록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해당 법안이 이미 통과돼 폐지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반도체는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산업인 만큼 반도체 지원법을 수정해 일정 예산을 전력 산업에 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향후 파이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64억달러,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달러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장이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이 클 것"이라며 "이 상태로라면 공사를 보류하고, 트럼프 정부와 협상해서 약속을 다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일단 투자를 보류하는 움직임이 대세다. "투자 계획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물음에 기업들은 한국 내 투자에 대해서는 축소 31.4%, 확대 19.6%를 나타냈다. 미국 투자는 축소 37.2%, 확대 7.9%로 집계됐다. 의약품 기업의 75.0%, 전기·전자 기업의 50.0%, 자동차 기업의 66.7%가 대미 투자를 줄이겠다고 답변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투자와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은 미국 투자 인센티브가 줄어들 경우 투자를 보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출도 부정적이다. 미국에 대한 수출을 전망해 달라는 질문에 41.7%가 부정적이었다. 긍정 답변은 고작 8.3%에 그쳤다. 공급망 리스크도 "심화할 것"이라는 답변이 48.2%를 차지했다. 또 생산비용이 늘 것이라는 답변이 28.2%로, 하락(12.7%)보다 많았다.
기업들은 정부를 향해 비상 체계를 구축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승환 기자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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