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현암사 펴냄)에서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는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나이 듦 같은 자연적 시간과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같은 문화적 시간이다. 자연적 시간은 누구나 똑같다. 그러나 문화적 시간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속해 있고, 무슨 문화를 공유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문화적 시간의 큰 특징은 인생 단계별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회적 과업을 정해 두었다는 점이다. 가령, 결혼 적령기처럼 그 일을 해야 할 적절한 때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이에 맞춰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출산 등을 반드시 해야 하고, 그 시간에 이 과업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덜떨어졌다고 비난받는다. 그래서 인류학에선 이 과업을 '통과의례'라 한다. 누구나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민속학자 아르놀드 방주네프에 따르면, 통과의례는 인류 문명의 공통 특징이다. 모든 사회는 출생과 죽음, 결혼과 출산 등 인생의 전환점마다 알맞은 의례를 둔다. 갈등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전환의 문턱마다 모든 인간은 정해진 일상을 떠나(분리), 사회가 마련한 의례 속에서 상징적 시련을 겪은 후(전이), 성숙한 인간으로 변해 일상으로 돌아온다(통합). 인간은 살아가면서 단계마다 통과의례를 반복해 치른다. 각각의 문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은 달라진다. 예를 들면 남들이 취업할 때, 창업을 선택한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물론 반드시 사회가 정해놓은 방식대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할 이유는 없다. 평범한 삶이란 무난하고 안전하지만, 그 결과도 대개 빤하다.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기보다 운명의 굴레를 따라가는 무명의 단역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모두가 특정 인생 경로에만 집착하는 사회의 앞날은 암울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생을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려고 한다면, 삶에서 오직 하나의 이야기만 가능하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적 드라마나 다른 대안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숙명론적 드라마 또는 체념적 드라마에 빠져선 안 된다.
수능이 끝났다. 결과에 상관없이 학생들은 모두 인생의 문턱 하나를 넘어섰다. 이제 성인으로서 자기 개성에 맞는 삶을 선택해 경험의 폭을 넓히고, 공부의 깊이를 더할 때가 되었다. 너무 조급할 이유는 없다. 젊음이란 그 자체가 축복이다. 넉넉한 시간은 열정과 모험에 충분히 시간을 쓸 기회를 준다. 안전한 길을 좇아 인생을 시시하게 만들기보다는 더 자주 고뇌하고 시도하면서 어떻게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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