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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최성룡 납북자가족 대표 "자식이 부모 찾겠다는게 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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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부친 납북됐다 처형…'유해 찾아오라' 모친 유지가 활동 계기

납북자 9명·국군포로 12명 구출…"법적 논란에도 멈추지 않을 것"

(의정부=연합뉴스) 심민규 기자 = "자식이 부모를 찾겠다는 것이 죄입니까? 법의 잣대와 여론의 판단을 받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촬영 임병식]


경기 파주시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다 지자체와 접경 지역 주민들의 강경한 저지로 이를 연기한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내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와 주민들이 모두 반대하는 일을 굳이 왜 하는가?', '어쩔 수 없이 한다면 왜 비공개로 하지 않는가?'는 질문에도 그의 답은 날이 섰다.

최 대표는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은 항상 '확인 불가' 4글자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우리 국민과 정부의 관심은 사라지고 있다"며 "남과 북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떠들썩하더라도 이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탈북 단체의 대북전단과 달리 나의 활동은 대한민국 국민을 구하려는 목적"이라며 "정부가 도와주지 못할망정 내가 가려는 길을 막을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의 아버지 최원모 씨는 북한에 의해 납치돼 처형당한 납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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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부대 소속 최원모 씨
6·25전쟁 당시 미8군 산하 켈로부대(8240부대) 소속이었던 최 대표의 아버지 최원모 씨.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67년 6월 5일 오전 8시께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우리나라 선박 풍복호가 북한경비정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당시 풍북호 선장이었던 최 대표의 아버지 최원모 씨는 선원 7명과 함께 북한으로 납치됐다.

납북된 선원 8명 중 5명은 약 4개월 만에 인천항으로 귀환했으나, 최원모 씨를 포함한 3명은 북한에 억류되었다.

최 씨는 과거 광복 활동과 6·25전쟁 당시 미8군 산하 켈로부대(8240부대) 소속인 점 등 북한에 대한 반역 사실이 발견되면서 1972년 12월 처형당했다.

아버지가 납북될 당시 최 대표의 나이는 15살. 그는 가족의 생사 확인조차 막막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부터 정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어떠한 도움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이인모 씨를 북한에 보냈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런 사람도 북으로 보내는데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 유해를 찾아오라'고 말한 게 시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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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이완섭 씨(왼쪽)와 최성룡 대표
2004년 남북자가족모임은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포로 이완섭(73) 구출에 성공했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촬영한 사진.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2000년부터 납북자와 그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대북 소식지 살포와 구출 작업을 벌였다.

최 대표에 따르면 2000년 4월부터 2016년까지 납북자 9명과 국군포로 12명을 구출해냈고 국군포로 1명의 유해를 북으로부터 송환받았다.

2004년에는 북한에 납북된 김영남 씨와 그의 일본인 아내 요코타 메구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한 그의 활동은 매번 법적 갈등과 마찰의 연속이었다.

과거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부로부터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고소당했고, 수사 당국의 장시간 조사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최 대표는 "납북자 가족을 돕기 위해 전단을 보내는 것이 어째서 법정 제재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가족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는 것이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납북자 문제는 이념적 대립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인도주의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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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는 납북자단체 회원들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공전되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회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에 차량으로 진입한 납북자가족모임회 최성용 회장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2007.6.1// hkmpooh@yna.co.kr


최 대표는 지난달 파주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치된 가족 소식지 보내기' 행사를 진행하면서 시민단체, 접경지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겪었다.

"지금까지 온갖 방법을 다 해봤는데 소식지를 보내는 것이 납북자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포기할 수 없어요. 북한과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알릴 수 있어요."

최근 주요 대북전단 살포자들이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살포 현장에 저울을 가져가거나 드론과 선박을 활용한 대북전단 살포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풍선 무게가 2kg을 넘을 경우 위반이라니까 저울을 가져가서 넘지 않게 해 날려버릴 것"이라며 "드론을 통해 특정 장소로 전단을 보낼 수 있는 기술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번 대북전단 활동이 국민들에게 납북자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언젠간 아버지 유해를 찾으면 꼭 합장해달라'고 말씀하시고 고통을 겪다가 떠나셨다"며 "어렵겠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라며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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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촬영 임병식]


지난 13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대표는 현 정부에서 통일부에 납북자대책팀이 신설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예산 부족 등의 현실적 제약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은 오직 자비로 구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납북자대책팀이 생겼지만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합니다."

wildboa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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