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한강이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해줬으면 하는 말[노원명 에세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 10월17일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 달이 훨씬 넘게 기자들을 만나지 않고 있다. 그가 참석한 유일한 공식 행사는 지난달 17일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이었는데 수상 연설만 하고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다. 이날 그는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란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수상자는 시상식에서 연설을 하지 않고 그전에 별도 수상 강연을 갖는다. 한강의 수상 강연은 12월7일 열릴 예정이다. 많은 한국인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대한민국이 받은 상처럼 여기고 기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작가가 직접 말하는 제대로 된 수상소감 하나를 듣지 못했다. 12월 7일이 되어서야 나머지 세계인과 동시에 듣게 된다. 한강의 이런 태도는 대단한 절제임에 분명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이라는 보편성에 주어지는 상인데 왜 한국인을 따로 배려해야 하는가 말할 수 있다. 그것도 하나의 의견이다. 내 의견은 다르다. 노벨문학상이 갑자기 솟아날 리 없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대중이 늘어난 결과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한다. 여러 나라에서 한국어 소비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이고 덩달아 번역 수준이 올라왔다.

한국어 득세는 대한민국의 힘이 커진 덕분이다. 먼저 하드파워가 커진 후에 소프트파워의 약진이 잇따랐다. 대중문화 영역에선 싸이부터 BTS, 봉준호, K웹툰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년 사이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되는 괄목할 성취가 있었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도 그들 개척자 중 한명이었다. 나는 K팝에서 시작된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한국어 소비 저변을 넓혔고 그것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은 받을 수도 있고, 안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 지평이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넒어진 지평의 과실을 가장 먼저 수확한 사람이 한강이다. 그것은 그의 능력이고 운이지만 그가 이번에 못 받았다면 미구에 다른 한국 작가가 받았을 것이다.

나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동료 한국인을 상대로 “이것은 한국어에 주는 상… 내 앞에 징검다리를 놓아준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감사한다”고 한마디 하길 바랬다. 그것이 어느 정도 ‘국뽕’으로 들리고, 국뽕은 한강의 취향이 아니고, 그래서 소중한 작가의 일상이 경미하게 흔들리는 불편이 있더라도 하길 바랬다. 한강이 한국어 작가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동료 한국인으로서 그 말이 듣고 싶었다.

그녀는 한국인 공동체를 상대로 어떤 헌사도 하지 않고 있다. 소감을 먼저 들어볼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대중에 첫 모습을 드러내는 12월7일 노벨문학상 강연은 그의 문학세계를 놓고 심도있는 문답이 오가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 자리에 썩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그녀에 앞서 한국어 지평을 넓힌 불특정 다수 공로자에게 감사 한마디는 했으면 한다.

그녀가 답변에 신중을 기해줬으면 하는 질문도 미리 상정해 본다. 문학과 역사에 대한 질문이 한두번은 나올텐데 조심하길 바란다. 나는 한강의 작품중 유일하게 ‘작별하지 않는다’를 최근 읽었다. 문학적으로는 내 취향이 아니었고 역사적으로는 쉽게 쓰여진 소설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문학의 자유를 활용해 너무 편향된 이야기를 너무 확신있게 극화하고 있다. 그 또래 예술가와 문필가들이 4·3을 다뤄온 천편일률적 접근법과 대동소이하다. 4·3 사건의 역사적 진실에 아무 이해가 없을 노벨상위원회는 상을 줄 수 있었겠지만 내가 만일 선정위원중 한명이었다면 ‘문학은 얼마나 역사를 왜곡할 자유가 있는가’ 고민했을 것같다.

주변의 추천으로 ‘제주 4·3 사건과 박진경 대령’이란 단행본을 구입해 읽고 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6일 제주도 9연대장으로 부임해 6월18일까지 43일간 대유격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남로당에 포섭된 9연대 장교들에 의해 6월18일 피살당했다. 반란군에 유화적이었던 전임 연대장과 달리 제대로 된 토벌작전을 펼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웅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4·3 재조명 열풍이 번지면서 좌익 진영에 의해 ‘양민학살을 지휘했다’는 혐의가 덧씌워졌다. 책의 저자중 한명은 박진경 장군의 손자이자 예비역 장성인 박철균씨다. 저자들은 공개된 사료를 근거로 박진경 대령 재임 중 어떤 양민학살도 이뤄지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가 읽은 문학작품 중 역사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작품 중 하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가 노골적인 스탈린체제 비판인 것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4·3학살 비판이다. ‘동물농장’과 ‘1984’는 내가 삼독, 사독하는 책이지만 볼때마다 새롭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을 일은 없다. 무슨 차이일까. 오웰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만 썼고 한강은 자신이 공감하는 것만 쓴 차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역사를 모티프로 삼을 수 있지만 대신 어렵게 다뤄야 한다.

한강이 12월7일 강연에서 문학속 역사에 대해 그가 쓴 소설처럼 쉽게 답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