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 ‘Everybody Hurts’(1992)
‘Pop in History, History in Pop’ 연재 237패자의 승복 : Everybody Hurts, R.E.M. (1992) |
1984년 시즌이 저물어 가면서 한국 프로야구계는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이만수가 초유의 타격 3관왕을 차지할 것인지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홈런왕과 타점왕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문제는 1리 차까지 따라붙은 롯데의 홍문종과 경쟁하는 타율 부문. 삼성 김영덕 감독은 타율 관리를 위해 이만수를 결장시키고 하필 마지막 두 경기에서 만난 롯데의 홍문종에게 무려 9개의 고의 사구를 지시하며 이만수를 기어코 타격 3관왕으로 만든다. “비난은 한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며.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애칭을 지닌 타격 3관왕은 그 후 40년이 흐르는 동안 롯데의 이대호만이 누려본 최고의 영광이다.
역사가 잔인한 것은 그것이 승리자를 위한 레드 카펫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네 명의 패배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 연설, 그리고 카멀라 해리스의 축하 전화와 승복 연설로 2024 미국 대선은 막을 내렸다. 승자의 승리 연설과 패자의 승복 연설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관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패배 연설이 아니라 승복 연설이라는 점이다. 패자의 자발적인 인정과 양보 그리고 승자에 대한 축복이 미국 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일리노이주 상원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링컨 후보에게 패배한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는 패배 후 위대한 승복 연설을 남긴다. “당파주의는 애국심에 굴복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대통령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오늘날 승복 연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 화합의 메시지는 이 연설로부터 시작됐다.
패배는 슬프고, 쉽게 잊힌다. 오래 남을 그 상처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일지도 모른다. 대학가 인디록(College Rock)의 시조가 된 R.E.M.은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아낼 때/낮과 밤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죠/그러니 견뎌요, 버텨내요/누구나 아파하잖아요/그래요, 우리 모두가 그렇답니다(If you’re on your own in this life/The days and nights are long/So hold on, hold on/Everybody hurts/No, no, no, no, no, you’re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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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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