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연금 개혁안 나왔는데 국회 논의, 한 차례도 없어
‘理事, 주주 충실 의무’ 국회의원부터 국민에게 지켜라
최근 2030세대 절반이 국민연금 폐지에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국민연금이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주는 일종의 다단계 금융 사기라는 것이다.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2056년에는 현재 갖고 있는 기금(1147조원)이 모두 바닥난다. 현재 20대가 50대가 되는 2057년부터는 소득의 28%(현재는 9%)를 보험료로 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틀리는 말도 아니다. 정부는 1년에 32조원씩 연금 부채가 늘어난다고 했다. 반면 연금을 받을 노년층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 우리나라 60대 인구수가 처음으로 40대를 앞질렀다. 10년 전인 2014년만 해도 60대가 40대의 절반 정도였다. 이젠 60대가 50대에 이어 둘째로 인구가 많은 연령대가 된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인구구조는 갈수록 나빠지는데, 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제도 자체에 강한 불신과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22대 국회는 출범 6개월이 되도록 논의 기구도 만들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9월 21년 만에 연금 개혁 단일안을 내놓았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 대체율은 42%로 유지하는 내용이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 조정 장치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후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지금까지 한 차례 논의도 없었다. 여야는 연금 개혁 논의 기구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만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처럼 22대에서도 특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원회에서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각자 주장하는 명분이야 있지만, 지금 어디에서 논의할지를 한가롭게 다툴 상황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가 큰 선거 이슈가 없는 올 연말을 놓치면 연금 개혁 기회는 영영 놓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여당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양보한다’는 자세로 야당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연금 개혁 특성상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유관 부처와 함께 논의하는 범국회 차원의 특위가 필요하지만, 먼저 야당이 원하는 대로 국회 복지위 소위에서 보험료율, 소득 대체율부터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소득 대체율은 44% 수준에서 합의했다. 이견을 보이는 소득 대체율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난 국회 합의 수준에서 야당과 절충안을 모색하는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민주당은 자동 조정 장치를 ‘자동 삭감 장치’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의견 차가 크다면 일단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거리로 나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국회를 책임진 제1당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 “(연금 개혁은) 꼭 해야 할 일인데 시간은 없으니 불가피하게 민주당이 다 양보하겠다. ‘역사적 소명과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연금 개혁을 공언한 대통령의 약속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런 그의 마음이 6개월 만에 180도 달라졌을 리 없지만, 지금 민주당은 연금 개혁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안팎에서 ‘이재명 구하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은 이사(理事)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의 이익 보호’에서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많은 기업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에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을 통과시키기에 앞서 국회의원부터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정당)의 이익 보호에서 ‘주주’(당원·국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해 적용하면 어떨까. 지금 독자들이 이 칼럼을 읽는 3분 동안 국민연금 부채는 2억원 가까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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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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