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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취재파일] 협력 없는 지방소멸대응기금…"우리에겐 감독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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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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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플레이, 축구 게임 같은 겁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되겠다고 각자 열심히 달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목표는 골을 넣는거에요. 누구는 포워드도 하고 누구는 수비수도 하고 감독이 전체적인 포지션도 조정해줘야지 골을 넣는 거잖아요."





지방소멸에 맞서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천태만상을 두고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취재진에게 건낸 말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수치를 인용하며 지방소멸이 심각하다고 설명하는 기사는 많으니, 이번 기사는 정부의 대안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이야깁니다.

육군 병장의 길부터 로빈슨 크루소 대학까지




지방소멸대응기금이란, 지난 22년부터 10년 동안 추진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 단위 지방소멸대응 사업입니다. 정부가 매년 1조원, 총 10조 원 규모의 기금을 꾸리고 전국 지자체 122곳에 나눠줍니다. 지난 5일, 2025년도 배정계획을 발표하며 4년차를 맞습니다.
20억을 들여 육군 훈련소 주변 도로에 무궁화 11km를 심는 사업(충남 논산 '육군 병장의 길').
53억을 들여 지역을 홍보할 유튜버, 제2의 김선태를 길러내는 사업(전남 구례 '인구크리에이터 육성').
16억을 들여 외국인에게 굴과 김 양식방법을 가르치는 사업(전남 신안 '로빈슨 크루소 대학').





지자체는 받은 돈으로 저마다 인구 정책을 추진합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세밀한 사정까지 일일이 알 수 없으니, 창의적인 정책을 상향식으로 제안하자는 거죠. 이렇게 매년 500여 개의 사업이 쏟아집니다. 이 사업들의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을 판단해 우선 순위를 정하고 차등적으로 돈을 지급합니다.

최우선 목표는 '생활인구' 증대입니다. 정착 인구를 바로 늘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부는 '생활인구' 증대로 방향을 바꿉니다. 생활인구란, 살지 않더라도 일정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 사람들까지 그 지역의 인구로 보는 개념입니다. 몇 시간만이라도 지역에서 소비도 하고 주민을 만나며 그 지역을 다시 찾을 이유를 외지인들이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군 입소를 마중하기 위해 찾아오는 매년 100만 명 가까운 면회객에게 무궁화를 심어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지역을 홍보하는 유튜버를 양성해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유치하는 것. 외국인 노동자를 어부로 길러내 출퇴근만이라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이게 인구정책이 맞나 의아해도,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지방소멸은 서울소멸로 이어진다?!




과연 적절한 정책일까. 분석을 위해 조금 돌아가겠습니다.

10년 전, 지금은 진부해진 지방소멸론을 처음 유행시킨 건 일본 인구전략회의 부의장인 마쓰다 히로야입니다. 그는 저서 <지방소멸>에서 지방이 망하면 왜 수도권도 망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합니다.

도쿄는 아이를 낳고 살기 좋은 도신 아닙니다. 높은 집값과 물가,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느라 결혼과 출산 적령기를 놓치기 딱 좋은 구좁니다. 자체적인 인구 재생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도쿄가 그럼에도 대규모 인구를 유지하는 이유는 하나. 지방이 양질의 인재를 끊임없이 공급해준 덕분입니다. 인구 공급처인 셈이지만 지방의 인구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서울의 올해 합계 출산율은 0.552, 전국 꼴찌입니다.

익숙한 대안은 낙수효과입니다. 수도권 팽창의 과실이 지방도 살린다는 것, 한국 정치권에선 수도권 규제완화론으로 구체화됐습니다. 이론적 토대도 있는데, 집적의 힘 가설입니다. 인구를 넓은 곳에 분산시키는 것보다 좁은 곳에 집중시킬 때 혁신이 일어난다는 가설. 에드워드 글레이저, 엔리코 모레티 등이 주창한 이 이론은 아쉽게도 입증되지 못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는 한 해 평균 80조 가까운 돈을 다른 지자체에서 빨아들입니다.

권역발전론




다른 대안으로 '균형발전론'이 등장합니다. 지방을 성장시켜 서울의 흡입력을 상쇄시키자는 것. 물론 모든 지방을 똑같이 발전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도시사회학에 따르면, 도시가 성장해 주변에서 돈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갖기 위해선 규모, 인구, 밀도 면에서 최소한의 임계질량에 도달해야 합니다. 한정된 재원으로 소멸 위험 228개 지자체 모두를 임계질량까지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모두를 살리려다 아무도 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완전한 몰빵과 완전한 분산 사이 접점을 찾는데, '권역발전론'입니다. 지방을 전라권, 경상권, 충청권 등 여러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 안에 저마다의 수도를 정합니다. 그 수도가 일정 이상의 규모, 인구, 밀도를 가질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합니다. 주변 도시들에게 역할을 정해주고(너는 교육! 너는 일자리! 너는 주거! 너는 의료!), 이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네트워크망을 이루도록 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권역별 특화산업 정책이 시초이며, 이념적 지향이 달랐던 이명박 정부도 '5+12 광역경제권 전략'으로 계승했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충청대망론,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메가시티론,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을 중심으로 논의가 불붙은 TK통합론까지, 권역발전론은 좌우를 넘나들며 등장했습니다.

협력, 서울에 맞설 카 드




권역발전론에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협력'. 같은 권역에 속하는 지자체들끼린 경쟁보단 협력해야 합니다. 옆 도시로 인구가 유출된다고 해서, 의료 거점 도시가 베드타운을 따라 임대주택 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 결과적으로 두 도시 모두 이도저도 안 되게 됩니다. 옆 관광 도시가 관광객을 대거 유치해 수익을 올린다고 해서 교육 거점 도시가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그 권역은 관광과 교육 분야 모두에서 서울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협력은 역할 분담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장점에 따라 역할을 나눠줄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네트워크망을 조직해야 합니다. 두 지자체가 불필요하게 충돌하면 이를 조정할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 없이 미시적 정책을 가지고 곧바로 수도권과 경쟁하겠다고 지자체들이 우후죽순 내달리는 순간, 권역 발전은 실패합니다. 행정력과 재정력으로 서울특별시에 맞설 수 있는 지자체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옆 동네가 돈을 더 받았다고?"



"지방 청년이 수도권으로 계속 빨려들어가고 있는데, 기금 사업은 지역과 개별 지역 간의 경쟁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이 구조를 내버려 두고 경쟁을 시킨다? 지자체에서는 군수님 치적 사업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지죠." / 이상림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센터 사회학 박사 책임연구원





전문가들이 지방소멸대응기금에 난색을 표했던 까닭은, 지자체들이 협력할 수 없도록, 즉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라는 겁니다. 권역발전론의 대전제와 반대됩니다.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정된 재원에서 많은 돈을 끌어올 수 있는 구조. 옆 지자체 눈치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작년 평가를 박하게 받았고, 옆 동네가 후한 평가를 받아 더 많은 돈을 가져갔다면? 그래서 군수님에게 면박을 들었다면? 일선 공무원들은 내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당장 뭐라도 눈에 띄는 사업'을 고민하게 됩니다. 권역 의료체계를 구축하거나, 수도권에 맞설 지역 명문대학을 육성하는 것처럼 지역에 꼭 필요하지만 시일이 걸리는 사업은 후순위로 밀립니다. 그렇게 당장 생활인구가 늘면 안도하고, 줄면 또 다른 사업을 고민합니다.

서로 비슷비슷…특색은 어디에?




가장 쉬운 방법은 빈 땅에 원래 없던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리는 겁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엔 이런 건설 사업이 대다숩니다. 지방 특색에 맞춘 창의적 사업을 모아보자는 취지와 달리, 서로 비슷비슷해지죠. 워케이션 센터를 해변에 짓냐, 계곡에 짓냐 정도의 차이 뿐입니다.

24년 기준, 관광지를 조성하는 문화관광 분야가 22.3%(112개)로 가장 많습니다. 청년 창업을 돕거나 기업 유치를 위해 산업단지를 짓겠다는 산업일자리 분야가 21.9%(112개), 기숙사나 임대 주택을 짓는 주거 분야가 13.9%(71개)로 뒤를 잇습니다. 모두 '지어 올리는' 사업들입니다. 22년과 23년에도 이들 사업 분야는 전체 500여 개 정책의 60% 가까이 됩니다.

장기 사업은 계속 쪼그라듭니다. 가령 의료사업은 23년 기준 6.6%에 불과했습니다. 시내 산후조리원이 없었던 태백시가 산후조리원을 짓겠다고 시도한 사업(지역포괄케어 사업), 정선군이 역내 폐광 지역에 응급의료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시도한 사업(몸과 마음이 건강한 의료건강케어), 정읍시가 서남권 소아외래진료센터를 설치하려고 24년부터 추진 중인 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교통사업도 2.3%, 교육사업도 9.5%에 불과하며 중간 평가 때 행안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돈은 받았지만…0%대 낮은 집행률




또다른 문제는 집행률이 낮다는 겁니다. 집행률이란 기금으로 받은 돈 중 얼마를 지출했는지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2년 기준 인구감소지역은 5.7%, 관심지역 0.4% 집행했습니다. 23년 기준으론, 인구감소지역 19.3%, 관심지역 22.2% 집행했습니다. 집행률이 0% 수준인 사업도 22년을 기준으로 38개, 23년을 기준으로 132개에 달했습니다.

이유가 뭘까. 지방의회의 승인 절차가 늦어지거나, 일단 급한대로 사업 계획은 올렸는데 상황이 계획과 달라지거나, 위탁을 준 민간 업체가 사업을 포기하거나 문제가 생겨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할 때 집행률이 떨어집니다. 장기적인 비전에 따라 천천히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당장의 성과를 근시안적 사업을 계획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지 못한 기금은 각 지자체의 내년도 세입 예산으로 잡혀 잠자게 됩니다. 정책들은 이름을 바꿔 추후 다른 정책에 합쳐지거나, 첫 삽도 뜨기 전에 흐지부지되기도 합니다.

유명무실 광역계정기금




주무부처인 행안부도 협력이 미약해질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닙니다. 광역계정기금을 따로 마련해둔 이윱니다. 기금엔 시군구 기초지자체에게 직접 내려주는 돈, 기초계정기금도 있지만, 광역시나 도 같은 광역지자체에게 내려주는 돈, 광역계정기금도 있습니다. 여러 지자체를 통과하는 도로를 놓거나, 지방에서 광역단위 의료기능을 수행할 병원을 짓는 것처럼 기초지자체 수준을 넘어 광역 단위 사업에 쓰라고 주는 돈입니다.

하지만 광역계정기금도 협력 사업보단 지자체의 개별 사업을 중복 지원하는 수준입니다. 23년 광역계정기금을 뜯어보면, 강원의 <스마트 워케이션 시범도시 사업>(강릉), 경북의 <귀농귀촌 체류 허브시설 '웰컴팜하우스' 조성>(경주), 충북의 <공동체허브 '누구나'센터 증축>(옥천)가 그렇습니다. 기초지자체 입장에선 경쟁해야 할 '한정된 파이'가 하나 더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인구를 늘린다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큰 그림 없이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소모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생활인구 증대가 지역에 항상 도움이 된다고 입증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가령 관광객이 많아져도 관련 일자리는 타 지역 사람들이 차지해 돈이 유출되고, 그 지역은 교통만 혼잡해지거나 땅값이 올라 현지인이 역으로 퇴출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지역 소비가 잠깐 늘더라도 이주 인구의 자식 세대까지 정착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감독이 있습니까



"목표는 골을 넣는 것이지 혼자 열심히 뛰어 다니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정책의 구조는 각자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뛰게만 만드는 구조다. 그렇게 해서는 지금 성과를 내기 어렵다." /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개별 선수가 자기만 잘 났다고 뛰어다니지 않도록 말리는 역할, 큰 포메이션과 전략을 정하고 역할 분담을 하며 게임을 끌고 나갈 사람. 때때로 개인의 열의와 욕심이 불필요한 경쟁으로 변질돼 팀원과 감정 싸움을 하지 않도록 따끔한 질책도 해야 할 사람, 바로 감독입니다.

지방소멸이란 한 판의 축구 게임, 이미 후반전에 접어들었다고, 진 게임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조론도 커지는 지금까지도 감독, 즉 중앙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자체의 개별 사업을 두고 평가한 행정안전부의 컨설팅 내역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목표 수치를 분명히 하라",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지적은 "축구공을 정성들여 차라" 수준의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SBS는 <지방소멸-사람이 귀하다> 시리즈 기사 5편에서 지방 소도시(밀양과 단양), 섬(주문도) 그리고 대도시(대구와 대전)의 소멸을 전했습니다. 방송 기사 특성상 개별 사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국가적 과제인 지방소멸은 개별 지자체 한 두 곳이 잘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권역발전론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면 필적할 다른 청사진을 보여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10조라는 큰 돈을 낭비한다는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총체적 전략 부재. 축구 게임 한 판을 승리하진 못할 지언정, 적어도 무승부로라도 끌고갈 전략과 전술이 있습니까. 우리에겐 감독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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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 기자 mzmz@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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