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금지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급격한 정책 전환에 나선 것은 북한군의 추가 파병을 막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브라질 마나우스에서 아마존 투어를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자국이 지원한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도록 허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에 달해 러시아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미국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가 방어 목적으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을 러시아군에 사용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우크라이나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확전 우려를 이유로 들어 에이태큼스 사용엔 제한을 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서방이 참전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NYT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이 러시아가 북한군을 전투에 투입한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군은 취약하며, 더 이상 병력을 파병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자국 영토 쿠르스크를 탈환하기 위해 북한군 약 1만명을 포함한 5만명의 병력을 지난 11일 전선에 투입했다. 한·미 당국도 북한군이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사용 승인한 에이태큼스를 이용해 쿠르스크 내 러시아군과 북한군 밀집 지역, 핵심 군사 장비와 물류 거점, 탄약고 및 러시아 내부 보급로를 타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꾼 데는 북한군의 파병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 당국은 이번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한 잠재적 이점이 확전 위험보다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에 파병의 ‘대가’를 치를 것이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한 미국 관리는 “북한의 추가 파병을 억제하는 것도 목표의 일부분”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파병이 값비싼 실수였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북한군 전투 투입을 확전 행위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두 달 뒤 있을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전에 우크라이나의 협상 입지를 최대한 넓히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해 왔고,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은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포기하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를 계속 장악할 수 있다면 러시아에 빼앗긴 자국 영토와 교환하는 것을 향후 종전 협상에서 조건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구 트위터)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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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에이태큼스 사용 허가 보도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공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이 스스로 웅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치권은 미국 조치에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국제문제위원회 블라디미르 자바로프 부위원장은 이번 결정이 “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며 러시아가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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