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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돼지불백 50인분 '노쇼'…김 중사가 보낸 군부대 공문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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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8일 경찰에 따르면 인천 중부경찰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신원미상의 남성 A씨를 추적하고 있다. 이 남성은 인천 영종도의 한 식당에 돼지 불백 50인분을 주문한 뒤 잠적했다. 사진 '아프니까 사장이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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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업주가 음식을 주문한 '김동현 중사'라는 남성 A씨와 주고받은 문자.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캡처


군(軍) 간부를 사칭해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단체 주문을 넣은 뒤 돈만 가로채려는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신종 사기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이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인천 중부경찰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신원미상의 남성 A씨를 추적 중이다. A씨는 인천 중구 영종도의 한 음식점에서 50만원 어치 음식을 선주문한 다음 찾아가지 않아 식당 영업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14일 이 식당 업주로부터 “군부대가 단체 음식 포장을 주문한 뒤 연락이 끊겼다”는 112 신고를 접수했다. 식당 측은 13일 자신을 공군 소속 중사 김동현이라고 소개한 A씨로부터 “돼지불백 50인분을 14일 오후 2시까지 준비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영수증을 요청한 다음, 업주에게 ‘부대 식품결제 확약서’라는 제목이 적힌 공문 형태의 문서를 업주에게 전송했다. 이 문서에는 ‘해병대 제2사단’이라는 부대 이름과 일시, 장소, 책임자 직인 등이 표기돼 있었다. “부대 훈련에 필요한 식품에 대한 구매비용 50만원을 지불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A씨는 음식을 요청한 날 오전 식당에 전화를 걸어 음식 준비 상황을 물은 뒤 연락두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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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공군 소속 중사 김동현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식당 측에 음식을 주문한 뒤 보낸 허위 공문.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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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 “부모님은 장병들이 먹을 것이라 더 넉넉히 준비하고 후식으로 먹을 귤 2박스까지 구매했다”고 했다. 이어 “약속 시간이 지나도 연락을 받지 않아 결국 경찰에 신고하고 음식은 상인회를 통해 인근 노인 분들과 어려운 소외계층에 기부했다”며 “전날부터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보며 눈물 흘리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난다”고 토로했다.

비슷한 시기 강화도 인근 중식당이나 해장국집 등 식당 6곳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음식을 대량 주문한 인물이 자신을 군 간부라고 소개하는 등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고 보고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경북 안동의 한 꽃집에선 군 간부를 사칭한 인물이 90만원 어치 꽃을 주문하고 1000만원 상당 와인을 대리 구매해달라고 요구하며 선결제를 유도하다가, 업주가 관련 내용을 자세히 묻자 잠적하는 일도 있었다. 6월에도 자신을 국방부 소속 대령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도시락 480개을 주문하고 업체에 980만원을 대납을 요구했다가, 업주가 이를 의심하자 연락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경찰은 이들 사건을 ‘군인 사칭’ 신종 사기로 보고 대량 주문을 받는 도매업체와 대리 주문 업체가 모두 관련됐을 가능성에 주목해 수사 중이다. 군 당국은 “업체에 공문을 보내거나 대납을 요청하며 주문하는 경우는 군에 없다”며 업주들을 상대로 신고를 당부한 바 있다.

문제는 피해를 오롯이 소상공인인 자영업자들이 본다는 점이다. 금전 요구에 응하지 않더라도 음식 등을 준비하면 ‘노쇼’에 따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형태로 볼 수 있다”며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경찰에선 피의자를 적극 검거해 범행 수법 등을 적극 알리고, 자영업자들은 대량 선주문시 예약금, 선결제 등 피해 방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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