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BNK자산운용 대표 |
"이 잔을 내 사랑에게! 오 진정한 약사여! 너의 약은 참으로 빨리 듣는구나. 이 키스와 함께 난 죽노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을 오해하고 독약을 마신다. 오판은 비극을 낳는다. 한국 주식시장도 비슷한 운명에 처한 것은 아닐까? 글로벌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왜 한국만 고립되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올들어 미국 S&P지수는 금리 인하와 기술주 강세로 25.8% 상승했고, 일본 니케이지수는 엔화 약세를 발판 삼아 15.6%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코스피는 8.9% 하락하며 완전히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글로벌 경기 둔화의 여파라기보다, 한국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오판이 깊이 얽혀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하락은 근본적으로 산업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업종이 시가총액의 30%에 육박하는 코스피는 불투명한 반도체시장의 미래가 성장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로 확산되면서 시장전체가 가라앉고 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중국경제에 민감한것도 문제이다. 시장 측면에서도 한국은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석달간 외국인은 주식시장에서 14.2조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단순히 환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배당성향은 27.7%로, 미국(36.1%)과 일본(29.6%)에 비해 낮다. 일본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환원을 강화하며 외국인 투자 유입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강력한 정책적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올해들어 달러대비 엔화는 10.7% 절하하여 8.5% 절하된 원화보다 약세폭이 컸다. 그러나 일본은 엔화 약세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했고, 이는 니케이지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 여전히 높은 대중 의존도, 미래성장동력의 상실에 대한 걱정으로 원화 약세는 기회가 아닌 위험으로 인식되며 자금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밸류업정책도 미지근하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지수를 발표하였지만, 이는 과거 'KRX300' 지수의 실패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KRX300은 기존 지수와 차별성을 가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았다. 밸류업 지수 역시 밸류의 정의와 평가기준이 모호하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밸류업을 추진하지 않고, 정부는 이를 강제할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새로운 지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이다.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은 더 깊은 고립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처럼, 잘못된 판단은 비극을 초래한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하락세는 일시적 흐름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산업과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일본이 투자자 신뢰 회복과 정책적 변화를 통해 시장 상승을 이끌고 있는 반면, 한국은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산업의 구조변화와 밸류업 정책 등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금융 흐름에서 더욱 소외될 것이다. 오판으로 독약을 선택한 로미오처럼, 한국 주식시장이 고립과 침체의 늪으로 벗어나기 위한 과감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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