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박수남, 박마의 감독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박수남 감독과 박마의 감독(사진 오른쪽).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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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무엇을 전해 가야만 하는가. 이번에는 우리가 후세에 전하는 활동을 해서…. 있었던 일은 있었던 거예요.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예요." _강제 징용 노동자 고(故) 서정우씨 아들
고 서정우씨는 1944년 14세 나이로 군함도 해저 탄광으로 연행됐다. 이후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던 중 1945년 8월 9일 피폭 당했다. 그는 해방 후 나가사키에서 살며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조선인 피해를 규명하고 젊은 세대에 자신의 체험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의 유훈은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서정우씨 이야기는 박수남 감독이 지난 1985년부터 촬영해 온 16㎜ 필름 속에서 열화돼 가던 10만 피트 분량의 기록 중 일부다. 여기에는 단지 10만 피트로 환산할 수 없는 일제 침략 피해자들의 풀리지 못한 '한'(恨)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한의 기록, 다시 말해 민족의 유훈이자 박수남 감독의 사명은 딸 박마의 감독에게 이어지고 있다.
재일조선인 2세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작가인 박수남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그의 딸 재일조선인 3세 박마의 감독이 연출한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함께 복원하는 오래된 필름 속 무한한 저항과 투쟁의 기록이다.
두 감독의 영화는 지난 13일부터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들이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만들고, 이를 베를린을 비롯한 전 세계 관객 특히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 이유는 하나다. 서정우씨가 그랬고, 그의 아들이 그랬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비롯한 민족의 유훈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수남 감독과 박마의 감독은 그들이 복원한 필름 속 피해자들의 오랜 염원은 가해자인 일본의 인정과 사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가해의 역사를 지우고 있는 일본과 책임지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분개했다. 이날, 박수남 감독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말한 단어들은 '한'과 '책임' 그리고 '우리'였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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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한을 기록하고 전달하다
'일제강점기'라 불리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통치를 당했다. 일본은 사회·경제적 수탈은 물론 '조선'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조선인들에 대한 폭력과 폭압을 서슴지 않았다.
군함도, 미쓰비시 중공업 등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착취당했다. 여성들 역시 강제 징용돼 노역·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아야 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대규모로 학살당하는가 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으로 인해 죽거나 살아남아서도 보상은커녕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해방 후에도 조선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이어지며 일본의 가해는 계속됐다. 일본은 명백한 '가해자'이지만, 오히려 가해의 역사를 지우면서 지금까지도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박수남 감독은 이러한 우리 민족의 분노와 슬픔, 한을 듣고 이를 다시 전달하기 위해 지금까지 '기록'을 이어왔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의 아버지나 형제들은 독립을 위해 항거하고 싸워왔다"라며 "용감한 열사님들의 투쟁과 괴로움, 그 한을 후손들에게 꼭 전하고자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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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 감독은 1964년 재일조선인 1세를 직접 취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사는 빈민촌에 거주하면서 한일 협정 배상 문제로 한일 양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인 피해자들 목소리를 직접 녹음기에 담으며 기록에 나섰다.
박 감독은 "평생 많은 강제 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한을 들었지만, 아직 많은 한이 묻혀 있다"라며 "더군다나 일본은 지금 피해자 배상을 하나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다 해결됐다며 뻔뻔스럽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윤석열 정부가 강제 노역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을 비판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강제 징용 노동자를 두고 "조선반도에서 온 노동자"라고 표현하며 강제 노역을 부인했음에도, 이를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의 손을 들어준 데 대한 통탄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일본을 방문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 피해자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반한 정부 배상으로 처리됐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 전범 기업이 빠진 '제3자 대위 변제'에 관한 구상권 청구는 없을 거라고 했다.
지난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어 지난해 대법원 판결까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확정판결만 총 8건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일 관계를 이유로 이 같이 결정한 것이다.
박수남 감독은 "임금 문제에 대해서 한국의 대통령은 우리 한국에서 배상하겠다고, 이런 어리석은 말밖에 못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할 소린가?"라고 반문하며 "너무 부끄럽다. 초등학교 1학년도 그런 대답은 안 한다"라고 탄식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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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의 역사 지우려는 日, 진실을 알리려는 두 감독
지금도 일본 정부는 가해의 역사를 지우고, 진실을 덮으려 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가해 행위를 알리는 모든 기록과 기록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제74회 베를린영화제 초청을 두고 주독 일본대사관은 영화제 운영 책임자 사무소에 연락해 작품 정보를 문의하고 면담을 요청하는가 하면, 작품 상영회 관련 내용과 관객층, 반응 등을 외무성에 보고했다. 이는 박수남 감독이 말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이자,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려는 창작자에 대한 압박이었다.
박수남 감독은 당시를 두고 "베를린에서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게 피해자의 한"이라며 "일본 정부는 영화제뿐 아니라 소녀상 관련해 베를린시는 물론 세계 각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소속 기자였던 박수남 감독은 펜을 들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탄압과 차별 앞에 피해자들의 침묵은 깊었다. 사실상 침묵을 강요받아 온 것이다. 그렇기에 박 감독은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영상에 피해자들의 모습, 그들의 침묵마저 담아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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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작품이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다. 이후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2012) '침묵'(2016) 그리고 '되살아나는 목소리'까지 그 기록을 이어왔다.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길 멈추지 않는 것, 일본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박마의 감독은 "우리는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통해 일본이 가해의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기는커녕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왜곡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라며 이번 사태를 두고 "베를린영화제에서 일본 정부가 나서는 것에서 압박을 느꼈다. 그리고 일본이 정말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재확인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일본이 베를린영화제에서 취한 태도는 강제 노역을 비롯한 조선인 착취와 대규모 학살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지워나가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그렇기에 두 감독은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더욱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지우고, 지우려 한 역사를 알리고, 아는 것이야말로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이죠. 일본에서는 가해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민들이 정부가 사실을 알리지 않아 화나고 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통해 일본뿐 아니라 한국, 해외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압력에 위축되지 않고 영화 상영을 더 넓혀가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어요." _박마의 감독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박수남 감독과 박마의 감독(사진 오른쪽).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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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유훈 이어받아 '지금 우리'가 나서야 할 때
일본이 가해 역사를 부정하고, 교과서에서도 이를 삭제하면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우경화되고 있다.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휘날리며 재일동포를 향해 일본에서 떠나라고 외친다.
박수남 감독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가 100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와서 조선인을 모조리 죽이라고 외치고 있다. 관동대지진 때 우리 민족에게 자행된 대학살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을 지금 일본 사회가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고마쓰가와 사건(1958년 일본 여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가 이례적인 속도로 교수형에 처해진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여전히 일본 내 조선인, 즉 재일동포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피해자가 강제 노역으로 인한 착취와 죽음을 증언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군함도 강제 노역을 두고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있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지워진 역사 속에서 우측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기에 두 감독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누군가는 잊으라 하고,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박마의 감독은 "일본 전체가 나서서 역사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라며 "서정우씨 아들이 '있었던 일은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선 노력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그 사실을 알리려 했다"라며 "일본 시민, 재일동포, 한국 관객들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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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 감독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항거했던 사람들, 강제 징용과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모든 조선인을 '열사'라고 칭했다. 그리고 "열사들의 후손인 우리들이 그들의 유훈을 이어받아 일본의 침략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신념은 올곧게 빛났다. 목소리 역시 90세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1985년 처음으로 영상 기록을 시작한 그때처럼 분명하고 카랑카랑했다. 아직 그에겐 기록해야 할 역사도, 복원해야 할 기록도, 풀어야 할 한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피해자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닌,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제가 스무 살 때, 일본 TV나 라디오에서는 매일 한국의 4·19 혁명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투쟁 뉴스가 나왔어요. 당대 젊은 학생들은 일어서서 피를 흘리면서도 궐기했어요. 저는 그런 학생들의 정의를 믿습니다. 그것이 '혁명'이에요.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함께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때의 정열은 어떻게 됐나요? 당신들의 정신 속에는 혁명 정신이 있을 거예요. 그걸 깨닫고, 온돌방에서 나와 일어나 주세요." _박수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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