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향년 98살로 타계한 오희옥 지사가 2017년 8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애국가를 독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
“숭고한 님의 삶에 한없는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17일 유일한 여성 생존 애국지사인 오희옥씨가 향년 98살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7년 전 오 지사가 애국가를 부르는 영상에 누리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향년 98살로 타계한 오희옥 지사가 2017년 8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애국가를 독창하고 있다. KTV 유튜브 갈무리 |
한국정책방송원(KTV)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은 2017년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오 지사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5분짜리 영상이다. 누리꾼들은 “별세 소식 듣고 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숨 바쳐 지켜내신 삼천리금수강산 우리 후손들이 힘 합쳐 자랑스럽게 지키겠습니다” 등 수십 개의 댓글을 달며 그의 영면을 기원했다.
누리꾼들이 오 지사를 추모하며 애국가 영상을 다시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 지사가 불렀던 조금은 낯선 애국가가 많은 이들에게 깊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오 지사는 2017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홀로 무대에 올라 애국가를 불렀다. 늘 듣던 애국가와는 조금 달랐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선율에 애국가 가사를 얹어 불렀다.
‘올드 랭 사인’은 졸업식에서 자주 들리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시작하는 노래다. 지금의 애국가는 대한제국 때부터 전해지던 가사에 작곡가 안익태가 곡을 붙인 것인데, 오 지사가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에는 ‘올드 랭 사인’에 맞춰 애국가가 주로 불렸다고 한다.
이날 오 지사는 흰색 상의를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반주 없이 오직 본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애국가로 가득 채웠다. 당시 아흔한 살이던 오 지사가 미세하게 떨리지만 단단한 소리로 애국가 1절을 끝까지 불러내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17일 향년 98살로 타계한 오희옥 지사가 2017년 8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방부 군악대 성악병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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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이 끝난 뒤 오 지사는 국방부 군악대 성악병의 손을 잡고 남은 3절을 지금의 애국가 선율로 불렀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 청중들도 기립해 제창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이날을 회고하며 오 지사를 추모했다. 문 전 대통령은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17년 고인이 올드 랭 사인 곡조로 부른 애국가를 잊을 수 없다”며 “구순의 여성 광복군이 홀로 무대 위에서 꼿꼿하게 반주 없이 부른 ‘광복군의 애국가’ 독창이 참석자 전원의 애국가 제창으로 이어질 때 국민 모두가 큰 감동을 받았고 애국과 헌신에 대해 벅찬 마음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썼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에스엔에스에 “고인이 ‘광복군의 애국가’를 부르시는 모습이 많은 국민들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고 했다. 올해부터 애국지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져 오 지사는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회장 영결식을 거행하고 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되는 첫 애국지사가 된다고 한 총리는 설명했다.
1926년 만주에서 태어난 오 지사는 1939년 13살의 나이로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를 모으고, 일본군 내 조선인 사병 탈출을 도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오 지사는 2015년 8월12일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특별기획전 개막기념 기자회견에서 “그땐 (독립운동을) 어른들 따라서 응당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나이가 들면 광복군에 지원해 나라 찾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라 없는 설움이 사무쳤다. 중국 애들이 우리를 ‘고려노예’ 라거나 ‘망국노’(나라 없는 노예)라고 놀려대면 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 지사의 집안은 3대가 내리 독립운동을 했다. 할아버지 오인수 선생은 경기 용인의 의병장이었다. 아버지 오광선 장군은 봉오동전투 등 중국 각지에서 무장독립투쟁에 참여했다. 오 지사의 어머니 역시 무장투쟁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을 먹이느라 한 끼에 12가마의 밥을 짓고, 일본군에 쫓기던 독립군을 숨겨주는 역할을 했다.
한편, 오 지사의 별세에 따라 생존 애국지사는 5명(국내 4명, 국외 1명)만 남게 됐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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