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눈 뭉치처럼 희고 토실한 함평 ‘돼지비계 비빔밥’…반드럽고 담백하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정경복궁’에서 파는 육회비빔밥에 돼지비계 올려놓은 모습.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금박쥐’ 서식지인 전남 함평에 가면 독특한 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비빔밥은 반찬과 밥을 한 그릇에 담아 고추장이나 간장 양념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이다. 비빔밥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식이다. 한국인의 ‘솔(영혼) 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비빔밥은 재료와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 회, 전어구이, 게장, 굴, 육회 등이 재료인 비빔밥이 있는가 하면 콩나물이나 각종 채소로 맛을 낸 비빔밥도 있다. 멍게비빔밥, 굴비빔밥, 콩나물비빔밥, 육회비빔밥, 낙지비빔밥 등 재료에 따라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평양, 해주, 서울, 전주, 진주, 통영 등 지역마다 맛도 달랐다. 그 지역의 특색을 한껏 한 그릇에 담은 것이다.



한겨레

함평 우시장 옛 모습. 함평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때 우시장이 성업했던 곳이 함평이다. ‘큰 소장’이라고 불린 함평 우시장은 1903년 문을 열었다. ‘함평 천지 전통시장’(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옛 이름 ‘함평시장’)과 함께 개설됐다. 조선 영조 때 발간된 생활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엔 ‘읍내장’ ‘망운장’ ‘나산장’ ‘선치장’ ‘사천장’ 등 함평 일대 시장에 대한 기록이 있다. 꽤 긴 역사를 품은 곳이 함평 시장인 것이다.



함평 우시장은 전라도 일대 솟값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1950~60년대엔 ‘소전’이라고도 불렸다. 전국 5대 우시장으로 불린 함평 우시장은 현재 학교면에 있다. 몇 번의 이전을 거친 후 2017년 ‘함평축협 가축시장’이 만들어지면서 현재 장소에 정착했다.



한겨레

‘정경복궁’에 나오는 육회비빔밥과 잘 익힌 돼지비계.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이른 새벽 소를 끌고 온 이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음식이 있었다. 돼지고기 국밥이었다. ‘장터국밥’이라고도 불린 돼지고기 국밥은 양이 넉넉하고 영양도 풍부해 시간이 돈인 장사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우시장이 함평시장 밖으로 이전하자 ‘돼지고기 국밥’ 장사는 전환기를 맞는다. 돼지비계를 넉넉하게 넣은 비빔밥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새 메뉴는 식도락 취향이 다른 손님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보드라운 돼지비계와 사각사각 씹히는 채소의 조화는 단박에 입소문이 났다. 하지만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함평군 안민수 문화관광해설사는 “건강이 중요해지면서 비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겨레

‘정경복궁’에서 나오는 선짓국.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시장이 열렸던 곳이기에 함평 소고기는 질 좋기로 유명하다. 식당들은 육회비빔밥을 주력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옛날’ 돼지비계 비빔밥이 그리운 이들을 위해 ‘돼지비계 비빔밥’도 판다. 하지만 정식 메뉴로 파는 건 아니다. 비계를 따로 준다. 이런 식이다. 함평 천지 전통시장 안에 있는 ‘정경복궁’에 가면 차림표 아래 독특한 글이 적혀있다. ‘비계가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직원에게 말씀해주세요’라고 말이다. 작은 그릇에 눈 뭉치만큼 하얗고 토실토실하게 잘 익은 비계가 담겨 나온다. 함평 비빔밥을 제대로 먹는 법은 육회비빔밥에 비계 한 숟가락 넣어 함께 먹는 것이다. 잘 비벼진 비계 맛은 은근하고 우아하다. 이가 겨울 올림픽 빙판 트랙보다 더 매끄러운 비계로 호강한다. 단지 주인장 이름이 ‘정경복’이라 ‘정경복궁’이 된 식당엔 비계 비빔밥 말고도 맑은 선짓국을 맛볼 수 있다. 이곳 ‘육회비빔밥’ 가격은 1만원이다.



한겨레

‘정경복궁’에서 파는 육회비빔밥.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민수 해설사가 추천하는 비빔밥집은 ‘화랑식당’과 ‘목포식당’이다. 역사가 오래된 노포다. 이 두곳도 비계를 따로 준다. 화랑식당엔 익힌 소고기 비빔밥도 있다. 비계를 넣어 먹는 게 ‘함평 육회비빔밥’을 제대로 먹는 법이라고 화랑식당은 알려준다.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아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 닫는다. 서둘러 가는 게 좋은 식당이다.



관련 기사 빼어난 것은 소탈하기 마련…여행중 만난 보물들



한겨레

전남 함평 돌머리해수욕장은 일몰 명소다.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전남 함평 돌머리해수욕장에 있는 무지개다리.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함평엑스포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황금박쥐 조형물. 박미향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본래 이름이 ‘붉은박쥐’인 황금박쥐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집에 오른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국내에선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됐다. 1999년 지역 주민이 우연히 폐광에서 발견한 후 2005년 28억원 들여 조형물을 만드는 등 황금박쥐는 함평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이제 함평 명물 목록엔 하나가 더 생겼다.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돼지비계 비빔밥은 별미 중의 별미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함평/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