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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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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뮤지컬 ‘위키드’ 30번 보고 영화를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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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02번째 레터는 20일 개봉한 뮤지컬 영화 ‘위키드’입니다. 개봉날 바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죠. ‘위키드’가 영화로 나온다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준 작품이라서요. 대중을 설득해내는 문화 리더의 비전과 소신, 공연과 친해지는 방법,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는 작품을 보는 눈. 저는 ‘위키드’를 알게 되면서 그전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기자가 됐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요. 12년 전 처음 만난 뮤지컬 ‘위키드’부터 시작해서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 ‘위키드’에 대한 제 의견까지 아래에 말씀드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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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to R: Ariana Grande is Glinda and Cynthia Erivo is Elphaba in WICKED, directed by Jon M.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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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 영화 어때’ 레터 독자분들께만 이실직고합니다. 영화 ‘위키드’ 기사가 저희 신문 20일 수요일자로 나갔는데요(기사 링크는 제일 아래에), 제가 기사에 뮤지컬 ‘위키드’를 30번 봤다고 썼는데, 사실은……. 30번이 아닙니다. 네, 그것보다 더 많이 봤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면 독자분들이 “아니, 그쯤되면 기자가 아니고 덕후잖아? 빠순이 아냐?”라며 제 기사의 신뢰도와 객관성에 의구심을 가지실까봐… 보수적으로 잡았습니다. 뮤지컬 골수팬을 ‘뮤지컬 덕후’, 줄여서 ‘뮤덕’이라고 하는데, 저는 뮤덕 아닙니다, 아니고요. 진정한 뮤덕이면 30 숫자 뒤에 영(0) 하나는 더 붙여야 합니다. 전 단지 ‘위키드’를 보통 관객보다 몇 번 더 봤을 뿐... 보다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사랑에 빠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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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키드’를 처음 본 건 2012년 5월 싱가포르에서였습니다. 그해 ‘위키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했거든요. 해외 배우들이 영어로 부르는 ‘오리지널 내한공연’이었습니다. 문화부 공연 담당이던 저는 ‘위키드’를 국내에 들여온 설앤컴퍼니에서 마련한 기자단 투어에 동행해 싱가포르에 갔습니다.

이번에 영화 ‘위키드’는 정말 고마워해야 하는 게, 지금은 ‘위키드’를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12년 전 그때는 한국에서 ‘위키드’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목 정도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정확히 뭔 얘긴지, 왜 미국에서 그렇게 난리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위키… 뭐요?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딱 이 정도가 대중의 반응이던 때, ‘위키드’가 뭔지부터 알리기 위해 설컴 직원들은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저희 지면 기사에도 썼지만, 당시 국내 뮤지컬 전문가들은 ‘위키드’가 안 될 거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오즈의 마법사도 잘 모르는데 오즈의 마법사를 비튼 뮤지컬을 누가 보겠느냐”는 거였죠. 저도 ‘위키드’를 몰랐지만, 매우 궁금하긴 했습니다. 제 호기심을 발동시킨 분은 설컴의 설도윤 대표셨어요. 설대표님은 주위 모두가 “안 될거다” “망할거다” “빚더미에 앉을거다”라고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위키드 재밌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거에요.” 설대표님은 의심에 가득차 거듭 묻는 제 질문에도 매번 자신있게 “위키드 잘 될 거에요, 두고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속으론 걱정을 꽤 하셨겠지만요.

‘잘 될 것’이라는 한 사람과 ‘망할 것’이라는 나머지 모든 사람.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롭니다. 2012년 12월에 첫 공연을 한 ‘위키드’는 대성공의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 뮤지컬 관객은 새로운 뮤지컬을 얼마든 즐길 준비가 넘치게 돼있었던 거죠. 그게 눈밝은 한 문화 리더에겐 미리 보였던 거고요. 전 첨 봤을 때 1막 마지막의 저 유명한 넘버 ‘중력을 벗어나 Defying Gravity’를 듣고 바로 반했습니다. 녹색의 엘파바가 공연장 천장으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은 볼 때마다 전기 오르듯 짜릿해요. “And nobody in all of Oz, No Wizard that there is or was, Is ever gonna bring me down!! Oohh~~~!!!” 듣는 순간 마법의 빗자루가 손에 쥐어지면서, 제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광속으로 충전됩니다.

영화 ‘위키드’를 보실 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이번 영화 ‘위키드’는 전체 2부 중 1부입니다. 네, 보다가 중간에서 끝납니다. 뮤지컬 2막 중에서 1막까지만 보여주고요, 엘파바가 ‘디파잉 그래비티’ 부르고 날아가는데서 끝나는 거죠. 저도 모르고 봤다가 “2부로 돌아온다”는 끝부분 자막보고 황당했습니다. 2시간이 넘어가는데 도대체 남은 얘길 어찌 쓸어담으려고 아직도 저러고 있나 싶더니.

아마 ‘위키드’ 전체 줄거리 모르는 관객은 중간에 끝난 줄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디파잉 그래비티’ 장면이 워낙 강렬해서 그게 전체의 끝인 줄 아실수도. 아마 내년에 ‘파트2′ 개봉하면 “뭐야, 내가 봤던 게 파트 원이었다구?”라는 분들 나오실 겁니다. 장담.

사실은 이야기 후반부가 더 재밌는데. 앞부분에선 느끼하고 생각없이 나왔던 피예로 왕자가 엘파바를 만나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는지, 글린다와 엘파바가 어떻게 변하는지 등등, 여러분이 ‘오즈의 마법사’에서 잘 아시는 뇌 없는 허수아비,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이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도 나오고요. 그걸 아셔야 감동이 완성되는데, 참참.

‘위키드’는 ‘파트 원’이면서 ‘파트 원’이라고 안 밝혀요. 내년에 개봉할 ‘파트 2′에만 ‘파트 투’라고 붙여놨더군요. 영화 ‘위키드’의 눈가리고 아웅식 마케팅은 미국 언론에서도 기사를 썼던데, 영화사 입장에서 보면 고육지책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끝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보니까요. 작년 여름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기억하시나요. 딱 중간에서 끝났는데, 예상보다 저조한 흥행의 원인 중 하나로 ‘파트 원’을 밝혔던 ‘정직함’도 꼽힙니다. ‘파트 투’ 나오면 봐야지, 하는 분들이 실제로 많아요.

조선일보

Jonathan Bailey is Prince Fiyero in WICKED, directed by Jon M.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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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중간까지만 보여주니까 이번 ‘위키드’는 보지 말라는 거냐, 라고 물으신다면, 아뇨, 보세요. 잘 만든 뮤지컬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의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연기가 너무 안 따라와서 답답했습니다. 당장 스크린 안으로 뛰어들가서 말해주고 싶더군요. “저기요, 얼굴엔 근육이라는 것이 있어요, 가끔은 움직여서 표정이란 것을 좀 지어보실 수 없을까요?” 뒤로가면 좀 나아지긴 하지만, 예뻐보이는 데에만 너무 신경을 써요. 혹시 영화로만 보신 분 중에 아리아나 그란데가 괜찮았다고 느끼신다면 담에 꼭 뮤지컬 버전을 보시길. 라이브 뮤지컬 무대의 글린다는 그렇게 꿔다놓은 마론인형처럼 눈만 동그랗게 떠선 절대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거든요. 피예로 왕자를 ‘브리저튼’의 조나단 베일리가 맡았다길래 조금 걱정을 했는데, 역시 올리비에상 수상자는 다르더군요. 얼굴만 보고 “저 얼굴이 춤까지 되면 너무 한 거 아냐” 했던 저의 단견, 반성합니다. 얼굴도 되고 노래도 되고 춤도 되는 남자, 여기 있습니다. 36세이니 피예로를 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그의 ‘파트2′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피예로가 후반부에선 역할이 훨씬 크니까요.

‘위키드’ 얘길하자면 12박13일 걸릴 듯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레터에 없는 내용이 포함된 지면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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