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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백영옥의 말과 글] [381] 미안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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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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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하고도 사과하기 꺼리는 성격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간 독자 사연을 접한 적이 있다. 굳은 결심에도 변화가 어려워 고민이라는 그에게 수전 데이비스의 책 ‘감정이라는 무기’의 한 장면을 얘기했다. 남편과 심한 다툼 후, 화가 난 저자가 가출을 감행하는데, 결국 몇 시간 동안 자신에게 익숙한 집 근처만 맴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우울, 분노, 관계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이것을 ‘감정의 경직성’이라 부르는데, 사람은 믿으면 안 되고, 사람은 변하지 않고, 사과하면 상대가 나를 만만히 볼 것이란 생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즉 습관이라는 익숙한 어제의 틀로 오늘의 낯선 곤란에 대처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결심만으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대신 구체적인 행동을 늘려야 한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면, 하루 세 번 의식적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것부터 연습하는 식이다.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은 고맙다는 말도 안 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은 미안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책상 앞에 행동 강령을 직접 쓰고 매일 보는 ‘결심의 시각화’를 절대 유치하게 생각해선 곤란하다. 이는 우리의 삶이 관성적으로 빠지는 잘못된 행동을 제어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신호 위반 때문에 경찰에게 잡힌 운전자가 다짜고짜 잘못 본 거라고 시치미를 떼며 화내는 것보다 나은 전략은 더위나 추위에 고생하는 경찰에게 일단 수고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사과하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실제 깔끔하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내 친구의 경우, 딱지 대신 주의 조치를 받으며 위기를 모면했다. 법원에서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전략으로 예상보다 더 큰 형량을 받는 사례는 얼마나 흔한가. 제 아무리 화가 많은 사람도 타인이 자신의 입장을 헤아려주면 한결 말랑해진다. 상대의 진심 어린 사과 때문에 손해도 감수하는 게 인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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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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