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신분증을 찍어보냈는데, 피싱범이 이 사진을 이용해 은행에서 2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면 누가 갚아야 할까요? 대출을 내준 은행의 책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두고 법원의 판단이 엇갈려온 상황에서, "고객이 갚을 필요가 없다"는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휴대폰 액정이 망가져서 수리 신청하고 대기 중이야. 아빠 휴대폰으로 보험금 신청하려고"
2022년 8월,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 회사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60대 A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들이라고 믿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운전면허증 사진을 찍어 보냈고 자주 쓰던 비밀번호 4자리도 알려줬습니다. 보내준 링크를 받아 어플도 설치했습니다. 피싱범들이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어플이었습니다.
피싱범들은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①은행 어플에서 간편비밀번호를 재설정하고, ②모바일 OTP를 발급받은 뒤, ③2억 2180만원을 대출 받아 본인들이 사용하는 계좌로 재빨리 옮겼습니다.
대출의 첫 관문, ①은행 어플에서 간편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있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피싱범들은 미리 받아둔 A씨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다시 촬영해 올리는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순식간에 2억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된 A씨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명의도용으로 인한 대출 실행 과정에서 은행 측이 본인 확인 조치를 소홀히 한만큼, 대출금을 갚을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은행은 "운전면허증 사본을 재촬영한 2차 사본을 이용해 본인 확인을 제대로 했다"며 "대출금은 A씨가 갚아야 할 돈"이라고 항소했습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윤강열 정현경 송영복)은 다시 한 번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은행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운전면허증의 2차 사본을 제출한 것 만으로는 제대로 된 본인확인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출금은 A씨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은행 측은 "사건 당시 실물 신분증과 2차 사본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이 없었다"고도 강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위험을 고객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비슷한 사건을 심리했던 수원지방법원 항소부에서는 "본인 확인 방법이 반드시 실물 신분증을 촬영하는 것으로 한정된다고 볼 근거가 없고, 사본과 원본을 식별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아보인다"는 이유로 대출금은 피싱 피해자의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있습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쟁점에 대한 항소심의 판단이 엇갈리는만큼,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비대면 거래를 하는 금융회사의 실무 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사진=JTBC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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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 회사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60대 A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들이라고 믿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운전면허증 사진을 찍어 보냈고 자주 쓰던 비밀번호 4자리도 알려줬습니다. 보내준 링크를 받아 어플도 설치했습니다. 피싱범들이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하는 어플이었습니다.
피싱범들은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①은행 어플에서 간편비밀번호를 재설정하고, ②모바일 OTP를 발급받은 뒤, ③2억 2180만원을 대출 받아 본인들이 사용하는 계좌로 재빨리 옮겼습니다.
대출의 첫 관문, ①은행 어플에서 간편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있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피싱범들은 미리 받아둔 A씨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다시 촬영해 올리는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순식간에 2억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된 A씨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명의도용으로 인한 대출 실행 과정에서 은행 측이 본인 확인 조치를 소홀히 한만큼, 대출금을 갚을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A씨의 뜻에 따라 이뤄진 대출'이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부족했는데도 은행이 더 의심하지 않고 대출을 내 준 잘못이 있다고 본 겁니다.
은행은 "운전면허증 사본을 재촬영한 2차 사본을 이용해 본인 확인을 제대로 했다"며 "대출금은 A씨가 갚아야 할 돈"이라고 항소했습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윤강열 정현경 송영복)은 다시 한 번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은행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운전면허증의 2차 사본을 제출한 것 만으로는 제대로 된 본인확인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출금은 A씨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차 사본을 통한 인증으로는 대출을 하려는 사람이 본인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겁니다. 관련 규정과 은행어플은 모두 '실물 신분증'을 촬영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은행 측은 "사건 당시 실물 신분증과 2차 사본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이 없었다"고도 강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위험을 고객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비슷한 사건을 심리했던 수원지방법원 항소부에서는 "본인 확인 방법이 반드시 실물 신분증을 촬영하는 것으로 한정된다고 볼 근거가 없고, 사본과 원본을 식별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아보인다"는 이유로 대출금은 피싱 피해자의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있습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쟁점에 대한 항소심의 판단이 엇갈리는만큼,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비대면 거래를 하는 금융회사의 실무 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조해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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