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교수·변호사가 쓴 ‘저작권 역사’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데이비드 벨로스·알렉상드르 몬터규 지음|이영아 옮김|현암사|404쪽|2만3000원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창작자에게 있다’는 개념이 상식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대 그리스 저작자들은 저작물을 재산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창작물을 언제 어떻게 발표할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었지만 발표된 저작물을 누군가 재배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린스턴대 비교문학 교수인 데이비드 벨로스와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인 알렉상드르 몬터규가 함께 쓴 이 책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몸집을 불려간 과정을 추적한다.
저작권은 18세기 영국에서 출판업자들의 지식재산권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업자들이 책을 찍어내게 된 뒤로 출판된 글에 대한 권리는 인쇄업자에게 주어졌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 대표적인 저자였다. 그는 1703년 정치 상황을 풍자한 책에서 선동적 명예훼손을 저지른 죄로 사흘간 칼을 쓴 채 조리돌림을 당한 후 투옥됐다. 이 시기 영국에서 ‘own(소유하다)’이라는 동사는 ‘책임지다’는 뜻으로도 쓰였는데, 이 뼈아픈 경험을 겪은 후 디포는 생각했다. 저자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own)’하지 못한다면, 왜 책 내용에 ‘책임져야(own)’ 하는가? 그는 1704년 발표한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저자가 책을 쓴 후 그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법이 책 때문에 저자를 처벌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저작권(copyright)’은 ‘복제할 권리’를 의미하지 않으며, 그런 적도 없다. ‘copy’는 풍요를 뜻하는 라틴어 ‘copia’에서 유래했다. 고문서를 ‘더 채워 넣어’ 아름답게 제작하는 필경사의 작품을 지칭하는 단어로 오래 사용됐지만, 주로 작가의 저작물을 의미했다. 현대 영어에도 그 의미가 온전히 남아 있다. 한 예로 저널리스트의 ‘copy’는 사본이 아니라 작성한 기사 자체를 뜻한다. 따라서 출판·인쇄업자들은 그들이 세상에 내놓는 작품들, 즉 ‘copy’에 대한 권리를 누린 것이다. ‘copyright’라는 용어가 18세기 초 만들어졌을 땐 텍스트를 인쇄하고 출판할 특권을 지칭할 의도였고 오로지 그런 의미로만 쓰였다.
1710년 통과된 ‘앤 여왕법’을 흔히들 현대 저작권의 탄생으로 본다. 이 법은 저작자가 첫 출판일로부터 최대 28년까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익권을 갖도록 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사후(死後) 저작권 기간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 그는 추문으로 실추된 아내의 명예를 지키려 프랑스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37세에 사망했다. 당시 러시아 법은 저작자 사후 20년간 권리를 보호해 주었는데,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는 저작권 만료 5년 전 황제인 알렉산드르 2세에게 아들들을 위해 저작권 보호 기간을 연장해 달라 탄원했다. 황제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며 모든 문학 작품의 사후 보호 기간을 50년으로 연장했다. “비평가들은 나탈리야 란스카야가 푸시킨을 두 번 죽였다며 비난했다. 푸시킨이 결투를 신청할 빌미를 제공했고, 다음엔 저작권을 연장하여 50년 동안이나 수많은 가난한 독자가 그의 작품을 읽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책은 흥미로운 사례들과 함께 저작권의 역사를 설명하다 결론 부분에서 의외의 반전을 보여준다. 저작권으로 혜택을 보는 인물은 소수인데 엄격한 저작권법이 대중의 지식 공유를 저해하고, 결국 유명 창작자의 저작권을 사들인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작권은 18세기 당시 사업체들이 남들의 무형 저작물을 영구히 소유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20세기의 마지막 25년간 엄청난 반전이 조용히 일어나면서 서적 출판업자 조합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자들에게 모든 혜택이 되돌아가고 말았다.”
저자들이 특히 비판하는 건 사후 저작권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하는데, ‘창작 의욕 고취’라는 저작권의 명분이 저작자가 이미 사망했는데도 유효하냐고 질문한다. 세상 뜬 지 오래된 저작자의 의도보다 “지난 세기에 창작된 보물 같은 작품들이 우리의 공유 재산이 되어 마음껏 즐기고 인용하고 개작하고 변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지 독자들을 고민하게 만들지만, 그 고민마저도 지적 여정의 일부로 즐길 수 있도록 매끄럽게 잘 쓴 교양서다. 원제 Who Owns This Sentence?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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