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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급전 미끼로 ‘어둠의 알바’… 공포에 떠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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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의 방구석 도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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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현이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해 놓은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경고포스터. "야미바이토는 범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히로시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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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로 오염된 돈을 당신에게 송금할 겁니다. 그 돈을 다른 계좌에 보내주기만 하면 송금액의 10%를 보수로 드리겠습니다.”

지난 17일 일본 소셜미디어에 “급전으로 30만엔(약 270만원)을 벌 수 있다”며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기자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메시지를 보내자 한 시간 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외국인도 가능하냐’는 물음엔 “계좌만 있으면 된다. 다만 본인 계좌를 쓰면 동결될 위험이 있으니 다른 명의 계좌를 살 수 있는 업체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급전을 미끼로 한 불법 아르바이트 공고가 활개치면서 일본 전역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기자가 안내받은 것 같은 돈세탁을 비롯한 각종 금융 범죄부터 심하게는 강도·살인 같은 강력 범죄 청부가 X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를 ‘어둠의 아르바이트’라는 뜻으로 ‘야미바이토’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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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지난 17일 일본 소셜미디어에서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구인책과 나눈 대화. 구인책은 "탈세 등으로 오염된 돈을 급여로 당신에게 송금하고, 거기서 또 다른 곳으로 송금해주면 송금액 10%를 보수로 드립니다"고 했다. '외국인도 가능하냐'는 물음엔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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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이달 초까지 도쿄와 인근 수도권에서 발각된 야미바이토 범죄만 20건에 달한다. 지난 2일엔 야미바이토에 나선 20대 청년들이 도쿄의 한 주택에 창문을 깨고 들이닥쳐 70대 거주자를 테이프로 묶고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지난달 요코하마시에선 야미바이토 범죄단이 20만엔을 훔치기 위해 75세 남성을 살해했다.

야미바이토는 보통 최초 의뢰인부터 범죄를 총괄하는 ‘지시역’, 소셜미디어에서 사람을 구하는 ‘중개역’과 직접 범죄를 실행하는 ‘실행역’ 등 많게는 4개 이상 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텔레그램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보통 연락을 나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은커녕 실명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한 명이 붙잡혀도 다른 가담자를 추적하기는 어렵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일본 경찰은 합동 수사 본부를 설치해 수사에 주력하는 한편, 범인들의 주연령층인 20대를 겨냥해 “수상한 구인에 응하지 말고, 혹시 응했다면 경찰에 즉시 신고하라”고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 수도권에서 체포된 야미바이토 가담자 40명 중 27명이 20대였다고 NHK는 보도했다. 일본 경찰청 X 계정에는 지난 14일 “반드시 잡는다. 도망은 불가능하다”며 야미바이토 모집책을 직격하는 경고문이 이례적으로 게시되기도 했다.

집권당인 자민당도 최근 당내에 대책 조사회를 꾸리기로 했다고 지난 14일 교도통신이 전했다. 내각 역시 조만간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주택 방범 설비를 위한 보조금을 확충해 국민 불안을 달래고, 범인에게서 압수한 스마트폰으로 다른 가담자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고도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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