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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등산하다 붉으락푸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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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조선일보

2024년 북한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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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에 서울 구파발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하자 우르르 등산객들이 몰렸다. 만차(滿車)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자정 무렵 막차에 몸을 욱여넣듯 끈질기게 올라탔다. 출입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북한산 가는 버스가 구파발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보다 못 한 중년 여자가 말했다. “다음 차 타유. 산에는 좀 늦게 가도 되잖어.” 그래도 출입문은 닫히질 않았다. 분투하다 포기한 중년 남자가 바깥에서 ‘푸시 맨’처럼 기운을 쓰자 비로소 닫혔다. 그 중년 여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나야 기도하러 절에 가지만 등산은 그게 아니잖여. 뭐가 그리 급해. 산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콩나물 시루가 된 버스 안에서 콩나물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모처럼 관악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산 반 사람 반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죽어라 오를 만큼, 헉헉,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객이 많았다. 연주대에선 아이스크림과 막걸리 등을 파는 중년 남자들을 보고 새삼 놀랐다. 아이스박스 무겁게 한가득 짊어지고 올라온 수고비를 붙여 소매가격의 3배로 사고파는 장이 섰다. 카드 환영, 폰뱅킹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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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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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자마자 성석제 소설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샘터)을 찾았다. 수록작 가운데 산 아래 허름한 구멍가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70대 안팎의 부부. 작가도 글이 풀리지 않을 땐 산의 신세를 지느라 오며 가며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냉장고에 맥주가 그득 들어 있는데 손님들이 마시는 것보다 그 부부가 마시는 게 많지 싶었다고.

단풍이 홍수를 이룬 늦가을, 작가의 친구들이 산행을 핑계로 몰려왔다. 중년 남녀 예닐곱이 정상 아래 공터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가게 주인 할머니가 함지(고무 다라이)에 막걸리를 담아 잔술로 팔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컵에 1000원. 작가가 남은 술과 안주를 다 팔아드리겠다며 “이 무거운 걸 어떻게 가지고 올라오셨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어깨 너머로 고갯짓을 했다.

햇살을 잘 받는 임도에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다. 가게의 또 다른 주인, 할아버지가 멋진 포즈로 기대서 있었다. 화려한 머플러에 선글라스를 쓴 채 여유작작하게. 작가가 눈인사를 하자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쳐들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공주에게 헛수작 붙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포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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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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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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