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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공항·식당서도 老兵 예우했다, 영웅 제복이 만든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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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변윤섭씨가 22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공원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1976년부터 미국 거주 중인 변씨는 지난 14일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으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 국가보훈부가 지난해부터 제공하는 ‘영웅 제복’을 입고서였다. ‘영웅 제복’을 입은 노병을 맞이한 한국 항공사의 미국인 직원과 공항 보안 요원 등은 “헌신에 감사하다”며 극진히 예우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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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하십니다(You’re very nice).”

지난 14일 오후 10시(현지 시각)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재미(在美) 베트남전 참전용사 변윤섭(73)씨가 한국행 비행기(YP132편)에 탑승하려 뉴저지주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미국인 보안 요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변씨는 이날 국가보훈부가 참전용사를 예우하려 제공한 ‘영웅 제복’을 입고 있었다.

변씨는 1970~1971년 약 14개월 동안 대한민국 해병2여단(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돼 미군과 함께 싸웠다. 1976년부터 미국 이민 생활을 했던 그는 고엽제로 인한 후두암 발병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으려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암(癌)과 싸우며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한 채, 동행인도 없이 나선 길. 하지만 한미 양국은 노병(老兵)을 잊지 않고 변씨의 여정을 보살폈다. 그가 ‘영웅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변씨가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쯤이었다. 제복을 입은 노병이 홀로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모습을 본 한국 항공사의 미국인 직원은 환한 미소로 그를 영접했다. 항공사는 거동이 불편한 변씨가 가장 빠르고 편안하게 비행기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조종석 바로 뒷자리인 ‘1번 좌석’을 제공했다. 승무원의 극진한 안내를 받아 앉아 보니, 앞좌석이 없어 다리를 편하게 가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오후 10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변씨가 여행용 가방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 엑스레이 검사대에 올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미국인 보안 요원들은 “꺼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통과하세요”라고 말했다. 몸수색 등도 간소화됐다. 제복을 입은 변씨가 검색대를 통과할 때 보안 요원들은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한국행 YP132편의 탑승 마감 시각은 15일 0시 1분이었다. 변씨는 남은 시간 저녁 식사를 하려고 라운지의 한 식당에 들어가 치즈 치킨, 프렌치 파스타, 레드와인 등을 주문했다. 변씨의 왼쪽 식탁에 60대 후반 백인 남성 2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이들은 제복을 입고 홀로 밥을 먹는 변씨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먼저 자리를 떴다고 한다. 노병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당신은 식사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놀란 변씨가 이유를 묻자, 옆자리 남성 2명이 변씨의 식사비 약 40달러(5만6000원)를 대신 지불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감사 인사를 하려는 변씨에게 그들은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식당을 떠났다. 양복 차림에 성조기 배지를 단 그들은 미국의 공직자처럼 보였다고 한다.

고향인 광주광역시에 머무르고 있는 변씨는 22일 본지 통화에서 “한미 동맹의 위대함을 피부로 느낀 날이었다”며 “미국인들은 한국 ‘영웅 제복’을 입고 있는 나를 마치 미국의 영웅처럼 대접했고, 나를 잊지 않고 융숭히 대접해준 한국 항공사에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1951년 광주광역시에서 6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변씨는 1969년 해병대에 입대한 뒤 통신병으로 차출돼 베트남 다낭으로 파병을 갔다. 베트남 호이안에서 청룡 2대대 본부중대로 배치받아 ‘청룡 작전’에 참가했다. 미 해병대는 변씨의 전우이기도 했다. 지뢰를 밟아 전사한 전우의 시신을 미 해병대 헬기에 실은 적도 있었다.

울창한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하는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맞서기 위해 미군은 고엽제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한미 참전 용사들은 장기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고 변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파병이 끝난 뒤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온 변씨는 편도염에 후두암까지 발생,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 특히 암 수술을 받은 지 3년 만에 체중이 71kg에서 54kg까지 줄었다. 미국에 정착하려 트럭 운전과 식당 운영 등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던 변씨의 삶은 베트남전 참전 후유증까지 겹쳐 녹록지 않았다.

변씨는 1995년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다. 변씨에게 미국인 의사는 ‘과거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베트남전 참전 사실을 이야기하자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엽제 노출로 후두암이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서를 써줬다. 변씨는 “미국인들이 참전 용사들에게 품고 있는 고마움과 경외심을 느꼈다”고 했다.

변씨는 이달 초 현지 전우회를 통해 신청한 국가보훈부의 ‘영웅 제복’을 받았다. 보훈부는 지난해부터 허름한 조끼 단체복이 참전 용사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장교 정복 형태의 제복을 제작해 6·25전쟁,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에게 무상 배포했다. 변씨는 “이제는 자랑스러운 선진국이 된 조국이 보내준 영웅 제복을 처음 받아들고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미국 이민 후 50년 가까이 힘들게 살았습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참전 용사라는 운명을 원망도 했었지요. 하지만 제복을 입은 제게 보여준 한미 양국 사람들의 환대에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이 제복이 한미 동맹 영속의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영웅 제복

국가보훈부는 지난해부터 생존한 6·25전쟁 참전 용사 3만6000여명, 베트남전 참전 용사 17만5000여명 전원에게 ‘영웅 제복’을 무상 지급하고 있다. ‘제복의 영웅들’ 사업 일환이다. 재킷·넥타이·바지로 구성된 ‘영웅 제복’은 그간 허름한 조끼를 단체복으로 입었던 참전 용사들을 제대로 예우하겠다는 취지로 제작했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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