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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골때녀들’의 진심과 내가 만났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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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실내 풋살장에서 훈련하는 여성 축구선수와 미소 짓는 젊은 남성 코치의 모습을 장강명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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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장강명 |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 김새섬 대표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www.gmeum.com)을 운영한다.







불티나게 팔리는 축구화…여성 축구 인기
1부에선 뛰지 못했던 축구 선수 김대광씨
격변 속에서 ‘틈새’ 찾아 프리랜서 코치로
실력 향상 바라는 동호인들과 최적 조합





“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그냥 축구를 가르친다고 해야 하나? 동호인들에게도 가르치고, 엘리트 유소년 선수들 개인 레슨도 하고…….”



조곤조곤하게 말하던 김대광 코치가 당황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일을 뭐라고 설명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세상에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직업과 그럴 수 없는 직업이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전자는 감소하고 후자는 증가한다. ‘프리랜서 코치’라는 말은 어떠냐고 묻자 그는 생각에 잠겼다.



“프리랜서 코치…… 그렇죠. 뭐 프리랜서이고, 또 축구 코치니까요.”



그는 유소년 선수 12명에게 개인 레슨을 하고, 사회인축구팀 네 팀을 지도한다. 그중 세 팀은 여성축구팀이다. 실은 여성축구팀이 아니라 여성풋살팀이라고 적는 게 정확하지만, 여성 풋살 동호인들은 ‘축구’라는 단어를 선호하며 김 코치도 ‘축구’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축구와 풋살, 두 용어를 섞어 쓴다.



“은퇴가 다가오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됐어요. 제일 잘 아는 것도 축구고, 제일 잘하는 것도 축구고,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의 길을 걸었는데……. 저 같은 경우 보통은 유소년 선수 지도자의 길을 가죠.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1992년생인 그는 1부 리그에서는 뛰지 못한 프로축구 선수 출신이다.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로 선정되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유망주였으나 20대 초반 연이은 부상으로 꿈이 꺾였다. 프로축구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세미프로 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현 K3리그)를 거쳐 K4리그에서 은퇴했다. 3년 전이었다.



“저도 선수 생활을 하며 지도자분들을 봤잖아요. 어떤 삶을 사시는지. 합숙 기간에는 집에 못 가요. 아이들 진학이 걸려 있으니 성과 압박도 크고요.”



축구 교실을 여는 길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축구 교실로 돈을 벌려면 먼저 돈이 있어야 한다. 사무실을 얻어야 하고, 축구장을 빌려야 하고, 등하원 차량이 있어야 하고, 차량 운행기사도 고용해야 한다. 그러던 차에 개인 레슨을 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2010년대 중반에 축구에 개인 레슨 시장이 생겼다. 사교육과 인터넷이 모두 촘촘해지면서 결합해 생긴 변방의 불안정 노동 시장. 들어가기는 쉽다.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 앱에 자기 프로필을 올리면 된다. 수많은 프리랜서가 그 플랫폼에서 자신을 판매했다. 김 코치도 프로필을 올렸고,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을 얻었다.



첫 ‘고객’은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다른 소비자의 평가를 조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랜서 플랫폼들은 배달 음식 플랫폼과 다르지 않다. 그게 플랫폼들이 이룬 주요 혁신이다. 성실히 가르치니 제자이자 고객은 조금씩 늘었다. 그중 한 명이 사회인축구팀에서 뛰는 여성이었고, 어느 날 그녀가 자기 팀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2주를 고민했어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는데 여성팀 코치라니. 동호인에게 축구를 가르쳐본 적도 없고, 축구와 풋살은 규칙도 좀 달라요.”



김 코치는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일이 들어오면 해야 하는 처지였다”라고 설명했다. 직업은 밥벌이 이상이지만, 먼저 밥벌이가 돼야 하니까.



여성 축구의 인기는 실감하고 있었다. 축구용품 매장에서는 여성용 축구화가 불티나게 팔렸고, 풋살장에 가면 열에 일곱은 여성팀 경기였다. 그가 여성축구팀 코치를 맡은 2021년에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도 방영을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성 동호인 선수는 2017년 2300여명이었으나, 올해는 4천명이 넘는다.



한겨레

김대광 코치가 선수들을 가르칠 때 쓰는 축구공과 훈련용 고깔, 접시콘. 개인 레슨과 사회인축구팀 훈련 양쪽 모두에 활용한다.




사회인축구팀 코치도 여성 축구의 인기 덕분에 생긴 일자리라 할 수 있다. 남성 동호인들은 전문 코치를 두려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경기를 직접 뛰려고 조기축구회에 가입하며, ‘이제 와서 내가 축구를 뭘 배워’ 하는 분위기다. 여성 동호인들은 배우려 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날 확인한 여성 동호인들의 실력은…… 엉망이었다. 기초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까지 제대로 배울 곳이 없었던 거죠. 중계방송을 본다고 실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용어도 잘 모르시고요.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즐겁게 경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자는 목적인지, 지루하더라도 강도 높게 기초 훈련을 받아서 실력을 키우자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몇 번 지도를 나가다 팀 운영진에게 물었다. 저한테 바라시는 게 뭔가요. 즐겁게 공 차는 방향으로 이끌어드릴까요, 아니면 진지하게 발전을 원하시나요. 후자라면 몇몇 분들한테는 힘들 수도 있어요.



“무조건 실력 향상이라고, 재미없어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직설적으로 막 뭐라고 하셔도 돼요. 상처받는 사람 있으면 저희가 알아서 다독일게요’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진심이셨어요. 그냥 제대로 가르치면 되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는 지적할 때 에둘러 말하지 않으며, 여성 선수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사적인 대화는 선수들끼리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저한테 당연한 게 이분들한테는 그렇지 않았죠. 고깔 세워놓고 드리블하기, 던져주는 공을 몸으로 받기 같은 기본기 연습은 저한테는 지루하죠.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했으니. 그런데 여성 선수들은 그게 재밌대요. 반면 수비수가 있는 상황에서 패스하기는 저한테는 재미있는데, 이분들은 버거워했어요.”



여성 선수들은 남성 선수들과 비교해 ‘리액션’도 달랐다. 시범을 보이거나 요령을 알려주면 감탄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남성들은 그러지 않는다. 김 코치도 여성축구팀을 지도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낯을 덜 가리게 됐다. 그는 풋살을 하는 선후배를 찾아가 풋살 전술을 배워 오기도 했다.



여성축구팀들한테는 아주 뚜렷한 목표가 있다.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내는 것. 여성풋살대회가 많아져서 출전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일 처음 맡았던 팀이 대회에 참가했어요. 조별 리그에서 세 경기를 겨루고 승점이 높은 팀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팀이 예선 세 경기를 통틀어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다 진 거예요. 마지막 경기 뒤풀이 자리에 저도 갔어요. 침통했죠. 선수들이 자기 탓을 하면서 ‘제가 어떤 점을 고치면 좋을까요?’ 하고 물어보셨어요. 자기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해 달래요.”



그는 선수 개개인의 단점을 지적하는 대신 다른 제안을 했다. 정말 자신을 믿고 열심히 따라줄 생각이 있다면 훈련 횟수를 늘리자고. 딱 1년만 주 2회 훈련하면 반드시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선수들은 동의했고, 꼭 1년 뒤인 2022년 가을, ‘제3회 우주인 스포츠대회 여성 풋살대회’에서 우승했다.



“훈련 횟수 늘리자고 할 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불쑥 그렇게 내뱉었던 건데……. 저도 신경 많이 썼고 선수들도 잘 따라줬지만 운도 컸어요. 우승 직후에는 장난 아니었죠. 선수들은 막 울고 난리 났죠.”



현재 수입은 K리그 챌린지와 한국 내셔널리그에 있을 때보다는 낮고 K4리그에 있을 때보다는 높다. 연 수입을 따져보면 유소년 선수 개인 레슨으로 버는 돈과 사회인축구팀 지도로 버는 돈의 액수가 비슷하다. 개인 레슨은 시간당 단가는 높지만 수요가 들쭉날쭉하다. 그렇다고 프리랜서 코치 자리가 대단히 안정적인 건 아니다.



“개인 레슨을 하지 않고 사회인축구팀 코치 일만 해서 어느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그러겠어요. 훨씬 더 즐겁거든요. 뿌듯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 일로 그런 수입을 올리기는 어렵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어요. 시장이 이미 커질 만큼 커진 거 아닌가. 지금은 분명히 ‘골때녀’ 영향도 있는 거고요.”



수요는 들쭉날쭉해도 유소년 선수 과외 시장은 상대적으로 더 견고하다. 입시 체육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 생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직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개인 레슨도, 프리랜서 코치도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4대 보험은커녕 보수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없다. 시급은 몇 년째 제자리고, 거기에 경기장이나 대회장까지 가는 이동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레슨도 코칭도, 평일 저녁과 주말에 몰려 있어요. 하루에 6건을 뛰는 날도 있죠. 아침에 이 경기장에서 수업하고, 마치면 바로 다른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그러다 첫 끼니를 오후 7, 8시에 먹어요. 경기장들 사이 거리도 꽤 되죠. 월요일에는 그냥 시체예요.”



동호인 선수들 간에 실력 격차가 커지는 것도 고민거리다. 타고난 운동감각이 좋고 몇 년간 꾸준히 훈련한 선수와 초보 신입은 이제 아마추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반기고, 거기에서 기회를 얻는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설계한다든가, 새로운 축구용품 시장을 개척한다든가,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러는 동안 한 단어로 된 직업을 가졌던 어떤 이들은 밀려나 밥벌이를 잃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틈새에서 변화를 간신히 좇아간다.



격변을 반기는 이들은 계속해서 세상이 뒤집혀야 한다고, 어떤 영역이 ‘창조적으로 파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코치는 “선수였을 때는 운이 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은퇴하고 나서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생존에 성공해서가 아니라, 축구를 계속 사랑할 수 있어서. 축구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격변의 시대에 분명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미래가 아니긴 하다.



한겨레

장강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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