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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만추문예] 진한 여운으로 일렁이는 詩, 준비된 작가를 만나는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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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추문예 ◆

매일경제

지난 15일 서울 중구 매일경제신문 회의실에서 심사위원들이 제2회 만추문예 최종심사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호승 시인,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최윤 소설가(서강대 명예교수), 조경란 소설가.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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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심사평

올해의 응모작들에서 특징적인 현상을 하나 든다면 '다채로움'이라 할 것이다. 이는 만추에 지은 시라도 청춘의 의욕과 신생의 활기를 머금고 새싹처럼 푸르게 돋아나는 모습을 띤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시들에 기분 좋게 취한 심사자들도 새벽 들판을 뛰어다니는 기분으로 흔감하다.

최종적으로 세 편의 시가 최종 후보작으로 선택되었다. 응모번호 61번의 '유리의 경계', 139번의 '기다리다 1', 175번의 '자서전을 짜다'이다. '유리의 경계'는 투명한 유리에 부딪쳐 죽은 참새를 통해서 외관의 매혹과 허위성을 다루고 있는데, 흔한 주제이지만 이야기를 꾸밀 줄 안다는 게 장점이다. 아름다운 대상의 거짓을 안다고 당장 돌아설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온갖 궁리를 하고 실패는 거듭되고 그건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다만 그런 사연의 의미를 묻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기다리다 1'은 철학적이다. 논리적인 생각의 흐름을 세상의 물상들에 비유하는 솜씨가 좋다. 다만 의미의 표출에 몰두하다 보니, 이미지들의 연관이 리듬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작위로 채집된 대상들이 무질서하게 부딪치며 왈강달강 어수선하다.

'자서전을 짜다'는 우선 차분하게 읽힌다. 수의를 짜는 화자가 제 생을 그윽이 되새기고 있다. 그 묘사가 노을에 젖은 저녁강(박재삼)을 보듯 생생해서 읽는 이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더욱이 그렇게 뜨겁게 살았어도 삶은 여전히 불가해하다. 그런 심사를 점자를 읽는 이의 마음에 투영한다. 생에 밀착할 뿐만 아니라 생의 의미까지에 밀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진한 여운이 있다.

심사자들은 '자서전을 짜다'를 당선작으로 뽑는 순간에 단박에 맞장구를 쳤다. 당선자에게도 하이파이브를 보낸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 역시 시를 쓰는 마음을 꾸준히 가꾸어가시라고 부탁드린다. 만추는 수확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새 삶이 시작되는 시대가 왔다.

소설 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전해 받은 총 15편의 응모작을 공들여서 읽었다. 예년보다 작품의 수준이 높아져 당선작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에 담긴 의도와 시도는 이 시대 소설이 하는 일에 대해 상기하게도 했다. 이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소설은 어느 정도는 희망이나 인간애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숨'은 폐경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의 출구 없어 보이는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중년의 위기는 숨 막힘처럼 찾아오고, 새로움의 시도는 프리다이빙을 통해 여전히 숨이 남아 있음을, 그 숨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숨을 참는 법, 숨을 참고 멀리 나아가는 방법과 과정이 이 글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더 디테일하게 그려졌다면, 울릉도에 온 이후 모든 것이 예정된 결말로 흘러가 버리는 듯 보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전남편에게 쓰는 서간체인 '치즈케이크'는 자기 고백적 형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된 문장과 어조가 돋보였다. '선량함이 장점'인 젊은 부부에게 생기는 삶의 균열, 그 후 다방면으로 존재의 변신을 모색하는 과정과 여성 특유의 숨겨진 능력과 변화를 담담하게 보여주려는 시도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독자에게도 느껴질 수 있는 생생한 장면이나 '불량'에 대한 인물의 새로운 관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을 나누었다.

올해 당선작을 '앵무새의 탈출'로 선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였을까.

탈출과 귀환을 반복하는 앵무새를 둘러싼 네 명의,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가족은 어느 면에선 모두 앵무새를 닮았고,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독자를 닮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인물에 내장된 페이소스와 문제를 가시화하는 필요한 소동들의 배치와 서술 방식의 은근함, 현실을 읽어내는 시선의 방식 등이 벌써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충분히 준비된 작가를 만났다는 설렘으로 어떤 이견도, 망설임도 없이 '앵무새의 탈출'을 올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축하드린다. 그리고 많은 응모자의 내일의 글쓰기에도 큰 박수를 드린다.

[정호승 시인 / 정과리 문학평론가 / 최윤 소설가 /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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