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약속 이후에 벌어진 일은 이른바 ‘인국공 사태’였다. 그제서야 1996년 ‘노동법 개악 날치기 통과’ 이후 신자유주의가 행한 노동정책이 노동자의 집단적 심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명백해졌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일터에서 나가야 했을 때, 그때 이미 노동 내부의 틈은 벌어졌다. 법과 제도, 행정명령이 동원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틈, ‘핵심노동’과 ‘비핵심노동’의 구별은 노동의 위계를 상징하는 기다란 사다리가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노동의 위계는 과거처럼 노력 여하에 따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각각의 진입경로가 달랐다. 사다리의 윗단과 아랫단은 각각 다른 진입경로를 통해야 한다. 공채라는 이름의 버젓한 입직경로와, 알바 사이트를 통한 취업은 신분적 표식이 되었다. 겉에서 보기에 사다리는 실상 분절적인 불안정 고용의 위계화였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 생각이 없었다. 외주화된 노동을 ‘자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사다리 중간쯤에 단 하나를 더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순간 불안정 노동 내부는 또다시 균열되었다. 그럼에도 ‘촛불 이후의 민주정부’라는 위선, 그 베일이 정권에도, 그 정권에 희망을 거는 대중에게도 필요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주디스 슈클라에 따르면 위선은 선을 가장한 악덕이다. 이념적 갈등은 위선을 최고의 악덕으로 만드는데, 반대파를 위선자로 폭로하면서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운다. 위선의 가면을 벗기기는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의 날선 공격으로 이뤄졌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려면 비정규직 시대를 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노동법 개악과 반노동정책을 반성적으로 성찰해야 했다. 이를 위한 정치는 무관심했고 무능력했기에, 손쉽게 ‘적폐청산’의 깃발을 꽂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정확하게 그 지점에서 나왔다. 정치적 토론과 합의가 불필요한 행정명령이 만들어낸 친노동 개혁 이미지 만들기.
애초부터 노동계는 반대했다. ‘자회사’는 불안정 노동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조금의 위기에도 가장 먼저 잘려나갈 것이 자회사 노동자들일 테고,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철회될 정책이었다. 급기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자회사를 다시 용역화하려는 칼을 빼들었다. 공사는 지난 10월 ‘자회사 경쟁력 강화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기존 자회사를 쪼개 민간위탁(아웃소싱)할 계획을 마련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는 ‘화끈한 노동정책’들은 ‘문재인의 선언’이 얼마나 약해빠진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싸움은 ‘용역화 반대’에 머물러선 안 된다. ‘민주적 신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은 대중운동의 패배적 심성을 먹고 자란다. 어쩌면 윤석열 정부 다음에 오는 위선의 베일을 우리 손으로 씌울지도 모를 일이다. 문재인식의 노동정책과 윤석열식의 노동정책, 자회사와 용역 두 선택지 안에서 위선과 환멸은 반복된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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