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총애는 이례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200여 명의 미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심각하고 치료 불가능한 성격 장애인 ‘악성 자기애(malignant narcissism)’ 증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보다 주목 받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 대해선 가차 없이 공격해 온 그의 과거 언행을 돌아보면 영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 머스크를 참석시킨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공개 행사에 그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19일(현지 시간) 트럼프 당선인은 가족과 측근들을 이끌고 텍사스를 방문해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시험 발사를 지켜봤다. 세계의 이목이 온통 쏠리는 대선 허니문 기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머스크와 나누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행보다.
‘트럼프 레거시’ 좌우할 머스크
그 배경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머스크는 대선 기간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자금을 모아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 단체)인 ‘아메리카 팩’를 세워 트럼프 당선인을 지원했다. 머스크는 2억 달러(약 2800억 원)를 쏟아부어 자금력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밀리던 트럼프 당선인을 대신해 7대 경합주 선거운동을 도맡다시피 했다.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위스콘신의 득표율 격차가 1% 남짓이었음을 고려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에 대한 머스크의 지분을 무시하기 어렵다.
머스크는 대선 직후 소셜미디어에 “선거가 끝나면 활동을 중지하는 다른 곳과 달리 아메리카 팩은 중간선거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선인 트럼프 당선인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올해 대선은 물론이고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까지 트럼프 당선인은 머스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머스크가 공동 수장을 맡은 정부효율부(DOGE)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 슬로건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 머스크가 목표로 내건 ‘딥스테이트(deep state·엘리트 관료제)’ 해체는 트럼프가 정치에 뛰어들면서부터 내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레거시(legacy·유산)’가 사실상 머스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AP통신은 머스크의 행보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미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줄 시험대”라고 분석했다. ‘코크 형제’처럼 자금력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 억만장자들은 많았지만, 머스크처럼 개인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고 직접 정치에 뛰어든 사례는 찾기 어렵다.
정부 개혁의 영웅인가, 금권정치의 악당인가
머스크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정치 전면에 나선 이유로 환경단체의 민원을 받은 연방항공청(FAA) 지시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바다표범을 납치해 헤드폰으로 스페이스X의 우주선 발사 소음을 들려주는 실험을 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공룡 정부의 과잉 규제가 원인이 됐단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과 손잡은 머스크의 행보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의 정부 개혁 구상에 “리바이어던(leviathan·무한정 증식하는 괴물)을 길들여 정부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성패에 따라 머스크는 인공지능(AI) 기술 시대 새로운 정치 참여와 정부 개혁의 영웅이 될 수도, 금권선거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희대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 머스크의 베팅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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