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습격 현장… 김나영 기자 르포
20일 이스라엘 남부 타쿠마 키부츠에서 만난 라파엘 시모니씨. 그는 매일 이곳을 찾아 추모객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생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리고 있다./김나영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20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95㎞ 떨어진 소도시 레임 부근의 타쿠마 키부츠(집단 농장).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라파엘 시모니가 이곳을 찾은 수십 명의 방문객 앞에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은 혼비백산이 된 축제장에서 자기 차로 세 번을 오가며 스물두 명의 시민을 대피시켰어요. 그 과정에서 그 아이도 목숨을 잃었답니다.” 노인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1년 전 상황을 돌이킨 뒤 서른한 살에 목숨을 잃은 아들 벤 시모니가 자신에게 어떤 아이였는지도 들려줬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7일 새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을 급습했을 때 피해 지역 중 한 곳이다. 밤늦도록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총과 미사일을 쏘며 오토바이를 타고 돌진해온 하마스 대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상당수는 인질로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이 축제장을 비롯해 당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으로 1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251명이 납치됐다.
당시 하마스 공격으로 불탄 차량 1500여 대는 축제가 열리던 곳 인근에 산더미처럼 쌓였고, 이곳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피랍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추모의 장소가 됐다. 매일 이곳에 나와 방문객들에게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시모니는 “더 많은 이가 벤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내게는 아들을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인근 마을 비에리 키부츠에서는 제부(弟夫) 및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이 인질로 잡힌 에일렛 하킴(56)이 하마스 공격 당시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줬다. “10월 7일 아침부터, 잠옷 차림으로 열일곱 시간 동안 남편과 방공 시설에서 문고리를 잡고 버텼어요.” 그는 “그 시간 동안 국가도 군대도 없었다”며 공권력 부재 상황을 이야기할 때는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하마스에 급습당한 이스라엘이 군사적 응징에 나서면서 전쟁이 발발한 지 13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와 인질 송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를 넘어 또 다른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근거지 레바논까지 확장 일로다. 하마스 습격 당시 살해당하거나 납치된 민간인들은 이번 사태의 대표적인 피해자다. 특히 생사가 불분명한 피랍자 가족들은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족들과 다시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풀려났거나 시신으로 돌아온 경우를 제외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파악한 피랍자는 101명인데 이 중 일부는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비에리의 키부츠(집단농장) 건물에 지난해 하마스 공격 때 끌려간 주민 열 명의 사진과 함께 ‘이들을 고향으로 데려오라(Bring them back home)’는 문구가 걸려 있다. 검은 테두리의 사진 속 일곱 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노란 테두리 사진 속 세 명은 생사 여부가 불분명하다. /비에리 키부츠=김나영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스라엘에는 ‘피랍자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연대감이 형성돼 있었다. 항공 관문인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내릴 때부터 이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항 청사에서 마주친 큼지막한 문구 ‘Bring them home(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와라)’은 시내로 진입해 대학·정부 청사·상점·극장 등 보이는 건물마다 붙어 있었다. 심지어 울퉁불퉁한 가로수 몸통에도 인질들의 사진과 이들의 귀환을 촉구하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거나 펄럭이고 있는 포스터와 깃발, 펼침막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일반 시민들도 인질 피랍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평범한 숲속 공원에서 추모 공간으로 변한 키부츠 음악 축제 피습 현장을 평일에도 수십 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예루살렘에서 두 딸을 키우는 이리트 로미(38)는 “이곳에 직접 와보니 압도되는 기분”이라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을 뿐인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건 너무나 안타깝지만, 언제나 선이 이긴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텔아비브 미술관 앞 광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천막에는 집회 주최자들이 상시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노아(26)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서 광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인질·실종자 가족포럼의 외교 담당 대니얼 셰크(왼쪽)와 인질 가족인 샤론 샤라비가 이야기하고 있다. 샤라비의 형제 한 명은 억류된 채 목숨을 잃었다./김나영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피랍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텔아비브 시내에 있는 테크기업 체크포인트의 사옥이다. 이 건물 3개 층에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사회 단체 ‘인질·실종자 가족포럼’이 입주해있다. 기업 측이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해 임차료는 없다. 납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동가로 자원했다. 포럼에서 외교 분야를 맡고 있는 대니얼 셰크 전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나처럼 은퇴를 해서 시간이 많고, 인맥을 동원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조직에 모여 있다”며 “우리 역할은 인질 가족들에게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형제 둘이 인질로 잡혀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생사불명 상태인 샤론 샤라비는 “매일 희망과 절망이라는 롤러코스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악몽이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 ☞ 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김나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