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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남편이 '대를 잇겠다'며 밖에서 데려온 아들… "내 호적에서 지우고 싶습니다"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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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 <12>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배우자의 혼외자 상속 막으려면
친자·입양 관계 증명 등 필요
잘못된 호적, 미리 정리해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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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8세 여성 A다. 내가 7세 때 일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갑내기 남자아이인 B의 손을 잡고 집에 왔다. 당시 할머니는 “대를 이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고, 아버지는 혼외자(B씨)를 낳았다. 처음에 아버지는 “B를 호적에 올리지 않겠다. 친척 집에서 키우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나중엔 “아들과 살 것”이라며 집에 데려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약 6개월 B를 키우시다 결국 아버지와의 이혼을 선택하셨다.

문제는 40여 년이 흐른 후 불거졌다. 어머니는 최근 병환으로 삶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등록부를 발부했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다. B가 어머니의 자녀로 등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아무리 유언하신다 해도 어머니 재산의 일부가 B에게 상속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B를 ‘상속인’에서 제외하는 방법이 있을까?

A: A씨 어머니는 1980년대 초중반 혼외자 B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매우 심했던 때라, 혼외 자식을 낳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 낳지 못한 죄인’으로 고통과 혼란 속에 살아오셨다. 필자는 가사 전문 변호사다 보니, A씨 어머니같이 상속을 앞두고 혼외 자식 문제로 속앓이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B씨의 상속을 막으려면 B를 어머니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삭제해야 한다.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 A씨 어머니는 가정법원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청구’를 해야 한다. A씨 어머니와 B가 친생자 관계가 아님을 확인해주는 소송이며, 이 소송에서 승소하면 어머니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B를 삭제할 수 있다.

A씨 어머니가 가정법원에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보통 A씨 어머니와 B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명령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관계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자관계가 아니다’라는 검사 결과만 나오면, A씨 어머니는 승소하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B가 삭제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아니다.

A씨 어머니가 승소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A씨 어머니와 B씨 사이에 입양 관계(양친자관계)가 없었다”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허위의 출생 신고라 할지라도, (A씨 어머니와 B씨 사이에) 감호·양육 등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사실이 수반돼왔다면, 법률상의 친자관계인 양친자관계를 공시하는 입양신고의 기능이 있다’고 본다. 쉽게 풀이하면 "입양 신고를 출생 신고로 잘못했을 뿐, 양친자로 입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했으니 출생신고를 입양신고로 봐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A씨 어머니와 B 사이에 ‘입양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A씨 어머니는 소송에서 패소하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B를 삭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A씨 어머니는 아버지(남편)와 이혼하지 않았는가? 설사 B씨와 입양관계가 성립됐었다 해도, 그 후 아버지와 이혼했기 때문에 어머니-B씨와의 관계도 끝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주장은 성립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민법은 ‘입양으로 인한 친족관계는 입양의 취소 또는 파양으로 인하여 종료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양부모의 이혼’을 ‘입양으로 인한 친족관계의 종료 사유’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어도, 이미 입양관계가 성립돼 있는 상태로 이혼했다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송에서는 승소할 수 없고, ‘파양 소송’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A씨 어머니의 경우는 “B에 대하여 감호·양육 등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 사실이 수반돼 왔는지(입양의 실질)”에 따라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의 승패가 갈린다. 입양의 실질이 있었다면 A씨 어머니는 패소할 것이고 따로 파양 소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파양의 경우, B씨가 파양에 동의하거나 패륜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승소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A씨 어머니는 최종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법원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A씨 어머니와 B씨가 유전자 검사 결과, 친생자관계가 아니며 △어머니가 이혼 전 약 6개월간 B를 돌보면서 함께 생활했지만 양친자로서의 신분관계를 용납한 것이 아니며 △결국 어머니는 남편의 혼외자 출산을 이유로 이혼했으며 △이혼 후 B와의 왕래가 전혀 없었던 점이 고려됐다. 결국 A씨 어머니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B를 삭제했고, A씨는 어머니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받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A씨 어머니가 이혼하지 않고 40여 년 동안 눈물을 삼키며 B씨를 돌보았다면 패소했을 확률이 높다. 법원이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 사실이 수반된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A씨 어머니가 ‘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청구에서 승소하길 원하는지’에 대해 법원에 탄원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B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B의 인생을 축복합니다. 하지만 전 남편 외도의 결과를 내가 죽어서까지 내 호적과 재산 분배에 남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와 B는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십시오.”

A씨같이 호적이 잘못된 분들이 적지 않다. ‘나중에 다 알아주겠지’ 혹은 ‘귀찮아서’ 그대로 둔다면 아무도 정리해 주지 않는다. 권리가 있다면 하루속히 보호받자. 나와 내 가족의 상처를 제대로 매듭짓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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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법무법인 에셀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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