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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日 '사도광산' 3연타 뒤통수…정부 안일함이 화 불렀다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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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약속한 '연례 추도식'이 24일 반쪽짜리 행사로 열렸다. 한국 측은 불참한 채 열린 추도식에서 이른바 '야스쿠니 인사'의 사과나 강제성 인정은 없었고,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은 25일 별도의 추도 행사를 열기로 했다.

이같은 파행과 관련, 1차적으로 비판받을 대상은 지난 7월 등재 당시 합의의 정신을 무시하고 또 '과거사 뇌관'을 건드린 일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신의에만 기대 화답을 기다리다 일본이 멋대로 추도식을 왜곡할 빌미를 준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도광산 문제에서 ▲강제노역 문구가 실종된 전시관 설치 ▲추도식 명칭 관련 강제성 희석 시도 ▲야스쿠니 참배 전력 인사의 파견 등 일본으로부터 '3연타'를 맞는 동안 정부가 제대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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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만 따지다 이력 뒷전



정부의 안일한 인식은 일본 외무성이 추도식을 이틀 앞둔 지난 22일 오전 제2차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추도식에 보내겠다고 통보한 뒤 행보를 보면 드러난다.

피해 유족까지 참석하기로 한 행사에 야스쿠니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참석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즉각 제기됐지만, 외교부는 이날 오후 9시쯤 낸 입장에서 "일본 정부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고 일본 측에 강조했고 이를 일본이 수용해 차관급인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참석 인사의 '급'에만 몰두하다 정작 참석을 요청한 정무관들의 상세 이력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일본 외무성의 정무관 3명 중 1명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없다.

정부는 그러다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3시쯤에야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일본 고위 인사의 참석에 방점을 찍고 추도식 참석을 강행하려던 정부가 결국 불참을 결정하게 된 '이견'은 추도사의 내용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진정성 있게 사과의 뜻을 표하라는 한국 측의 요구를 끝내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24일 일본 측만 참석한 추도식에서 이쿠이나 정무관은 한반도 노동자를 언급하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에서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가치를 언급한 뒤 "빛나는 (등재) 성과는 위험이 수반된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에 종사한 광산 노동자들을 비롯한 선인들의 헌신의 산물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 노동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는 예상대로 없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광산 노동자들 중에는 1940년대에 우리나라의 전시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오신 많은 분들도 포함됐다"고도 표현했는데, '합법적으로 병합한 식민지 자국민을 동원령에 따라 소집한 것'이라는 전형적인 일본 측 논리로 볼 여지가 있다.

일본은 당초 한국 측과 합의한 것과 달리 이날 식순에서 추도사도 제외하고 이쿠이나 정무관의 발언을 '인사말'로 명명했다. 이날 발언 내용 등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한국의 보이콧 결정은 늦더라도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결'을 원하는 피해 유족 앞에서 야스쿠니 참배 인사가 이런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가해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유족은 25일 오전 사도광산 옛 기숙사터에서 별도로 추모 행사를 열 예정이며,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와 외교부 당국자도 참여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차관급 인사 중 과거 이력 논란이 없는 인물을 보내는 식으로 일본 정부가 조금만 성의를 보였어도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여러 차례 대승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일본이 자꾸만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행동을 하는 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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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 위치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 뉴스1





'후속 조치' 방점, 논란 불씨 자초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전 "조선인 강제 노역 등 '전체 역사'(full history)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를 위한 컨센서스(전원 합의)를 막아설 것"이라던 한국이 등재에 동의한 배경은 일본의 후속조치 이행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등재 전 전시실 설치'와 '등재 후 추도식 개최'가 핵심이었고, 이는 정부가 일본의 행동을 얻어냈다고 자평한 근거였다. 그러나 일본이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한 전시관 어디에도 '강제'라는 표현은 없었다.

추도식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추도식 명칭에 '감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정부가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또 유가족의 추도식 참석 경비를 한국 정부가 전액 부담하기로 한 것도 관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칭도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확히 누구를 추모하자는 취지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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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도유 갱도. 갱도 안에는 작업하는 65개의 사람 모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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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다 해놓고…日에 칼자루 준 형국



애초에 일본 민간 차원에서 실시되던 추모 행사에 ▲올해부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참석하기로 했고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추모하기로 했다며 정부가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한 게 오판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추도식의 경우 처음부터 일본이 약속을 어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이를 성과로 강조하면서 오히려 일본이 칼자루를 쥐게 하는 모양새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안 그래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매년 반복되는 '캘린더성 악재'가 많은 한·일 관계에 갈등의 불씨만 추가된 꼴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사도광산 연구 관련 권위자인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이번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느니 한국이 불참 결정을 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며 "일본의 후속 조치가 미진한 데 대해 정부가 유네스코 측에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매년 추도식을 여는 걸 넘어 상시로 추도가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는 등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 경시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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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안과 관련, 실무 협의를 주도한 건 외교부이지만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 수용→추도식 보이콧'이라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대통령실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외교적 레거시'에만 집중하다 양국 관계의 가장 민감한 고리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안일하게 접근하는 양상이 또 반복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수년간 양국 관계를 가로막아온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자 변제' 해법을 꺼내 들었지만 2년 가까이 일본 측 호응은 전무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한국은 "우리가 물잔을 먼저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반 잔을 채워줄 것"(박진 전 외교부 장관)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번 추도식 파행으로 일본은 차 있던 반 잔의 물마저 엎어버린 격이 됐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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