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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고공농성 들어간 '마지막 판자촌'···'거주사실확인' 놓고 갈등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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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구룡마을 가보니]

10m 철제 구조물 위 천막치고 고공 농성

30여 명 주민들 간이 건물에서 밤 지새워

강남구청 상대 거주사실확인서 발급 촉구

주민 우선 토지 매입 위해 확인서 발급 必

"합리적인 대책 마련할 때까지 농성할 것"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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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기억하라! 용산. 거주사실확인서를 발급하라.”

25일 새벽,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입구에 설치된 10m가량의 철제 구조물에는 이 같은 문구의 현수막이 부착돼 있었다.

구룡마을 주민들이 이달 23일 서울시와 강남구청을 상대로 ‘거주사실확인서’ 발급을 촉구하며 구조물 위에 오른 지 사흘째에 접어드는 밤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 구조물 꼭대기에는 주민 몇 명이 천막을 치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두꺼운 옷차림을 한 서너 명의 노인들은 구조물 옆 간이 건물 앞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여기서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 중반”이라며 “수십 년을 살아온 노인들이 5월부터 집회를 열고 있는데 결정권자들이 우리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30여 명의 주민들과 잠시 추위를 피해 건물 내부로 들어온 유귀범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은 “40년 가까이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인데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합리적인 이주 대책을 시와 구에서 마련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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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구조물에 부착된 현수막에 쓰여 있듯이 이들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거주사실확인서’ 발급을 주장하고 있다. 향후 주민들이 우선적으로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서류라는 것이 유 위원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들이 살고 있는 주택이 현재 ‘간이공작물’로 지정돼있다는 점이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제6조에서는 비닐하우스, 양잠장, 고추·입담배·김 등 농림수산물의 건조장, 버섯 재배사, 종묘배양장, 퇴비장, 탈곡장 등을 간이공작물로 정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닌 소·돼지 같은 가축이 사는 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라며 “주민세도 내면서 살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증거가 바로 거주사실확인서”라고 강조했다.

구룡마을 개발로 들어설 주택에 대한 분양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분양권을 받아도 높은 주택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유 위원장은 “건너편 아파트가 25억을 호가하는 지역인데 무슨 수로 이곳 주민들이 높은 주택 가격을 감당하나"라면서 “거주사실확인서 요구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지만 토지 매입을 위해 최소한 우리가 여기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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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라고 불리는 이곳 구룡마을은 지난 2016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향후 공동주택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서울시는 구룡마을을 최고 25층, 3520세대의 공동주택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내놨다.

이와 함께 구룡마을 주민들의 거취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개발 주체인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주민들에게 임대 주택 공급과 보상금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수십 년을 살아온 터전에 대한 높은 수준의 권리를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특히, 토지와 관련해 최초 마을의 조성원가를 바탕으로 입찰이 아닌 주민들의 우선 매입을 주장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SH가 밝힌 개발 계획 속에 살 수 있는 땅은 상업지구인 7800여 평의 땅인데 이마저도 입찰로 들어오라고 한다”면서 “입찰이 되면 우리가 그 금액을 감당할 수 없는 만큼 법에 있는 조성원가에 따라 수의계약 형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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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찰은 전날 집회 과정에서 도시개발법 위반 혐의로 망루를 설치한 작업자 6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세운 10m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구청 등의 허가 없이 지어진 불법 건축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밤에는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현장을 직접 찾아 상황을 점검하는 등 안전한 집회 관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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