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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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9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11.25) 아침신문 1면에는 △한국,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6곳) △청년 신규채용, 6년만에 최저(3곳) △이재명 대표, 오늘 위증교사 1심 선고(3곳) △국제 플라스틱 협약(2곳) 등이 주요하게 실렸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사도광산 사태
② 시선, 클릭!
- 20대 신규채용, 6년만에 최저
- 내년 1%대 성장 우려
- 병원에서 폐렴 걸린다
- 교외선 20년 만에 다시 개통
③ Now and Then : 희망가(영화 ‘군함도’ OST, 1921)
① 차이의 발견
# 사도광산 사태
- 사도광산 추도식이 어제(24일) 일본 니카타현 사도섬에서 한국이 불참한 가운데 일본 단독으로 열렸습니다. 일본 정부 대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 그리고 ‘강제노동’ 표현이 담기지 않은 추도사 등을 뒤늦게 확인한 한국 정부가 불참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이미 예고된 사태나 다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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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찬성한 윤석열 정부
- 일본 니카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은 에도 시대인 1601년에 금맥이 발견된 이래 일본 최대의 금광이었습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와 강제노역을 했는데, 모두 1519명의 조선인들이 노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그곳에서 숨졌고, 일부는 고국에 돌아왔어도 진폐증 등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18년부터 사도 금광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는 관계당사국이 반대하면 해결될 때까지 심사를 무기한 중단합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강제노동’을 알린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찬성해 주면서 2024년 7월27일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그러나 일본은 앞서 2020년 6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유네스코의 경고까지 받은 바 있기에 일본의 약속을 믿기 힘들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나왔습니다.
한겨레 그래픽 |
2. 20일(수), 일본 추도식 발표
- 일본은 24일(일) 사도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민간단체, 지자체 관계자, 일본 중앙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 이때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석하는 가운데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추모의 뜻을 표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3. 22일(금), 오락가락 외교부
- 일본 외무성이 이날(22일) 정오께,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참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추도식을 놓고 일본과 협의를 하던 한국 정부는 차관급인 정무관의 추도식 참석을 요청해 왔는데, 이 기준에는 부합한 셈입니다.
- 그런데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있습니다.
- 우리 정부는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석한다는 점을 일본 정부 발표 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문제 이력은 몰랐던 것입니다.
-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일제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조선인 노동자 추모 행사에 일본 정부 대표로 오는 건 현장에 참석할 한국인 유족들을 모욕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 그러자 외교부는 애초 이날 오후 2시에 추도식 관련 브리핑을 하려다 5분 전에 이유를 밝히지 않고 급히 취소합니다.
- 그러다 밤 9시에 입장을 냅니다.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해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이를 수용합니다.
4. 23일(토) 추도식 불참 결정
- 토요일인 23일 오후, 정부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불참을 결정합니다.
- 야스쿠니 참배 이력에 이어 일본 쪽 추도사에서 ‘강제동원’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외교부는 불참 배경으로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 이 사이 한국 쪽 유가족 11명은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이미 일본에 도착한 상황이었습니다.
5. 24일(일) 일본 단독 추도식
- 어제 사도섬에서 한국이 불참한 가운데 일본만의 추도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습니다.
- 그러나 ‘강제 동원’이라는 말은 없었고, 사죄나 유감 표현도 없었습니다.
6. 25일(월) 한국 쪽 추도식
- 오늘 오전 9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의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한국 유가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합니다.
- 외교부는 이에 대해 “자체 추도 행사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 쪽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일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아버지, 할아버지가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사도섬에 한·일 추도식 참석한다고 온 유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 귀퉁이에서 한국 쪽 인사들만 옹기종기 모여 초라한 추도식을 갖게 될 때, 그 심정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라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한겨레 3면 그래픽 |
7. 예고된 외교참사
1) 등재 때도 ‘강제동원’ 언급 없었다
- 지난 7월 유네스코 등재 당시, 일본은 ‘강제동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그때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이 되풀이해서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과거 (2015년)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동원 강제성’에 대한) 표현을 갖고 협상력을 허비하기보다는, 그것은 이미 우리가 챙겨놓은 것이기에 다시 한번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고, 더 나은 이행 조치를 챙기기 위해 노력한 결과”
- ‘더 나은 이행조치’란 △상설전시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 알리기 △노동환경의 가혹함 소개 등입니다.
- 그런데 ‘상설전시’란, 사도광산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치 시늉만 낸 듯한 것을 말하며, ‘한반도 출신 1500여명’에 대해 일본은 명부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환경의 가혹함에 대해 이번에 이쿠이나 정무관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예전 1970년대 중동에 파견된 건설노동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등재 이후 추도식 협상도 참패
- 추도식을 매년 열자는 것, 그리고 추도식에서 ‘강제동원’을 명시하자는 게 한국 쪽 요구였습니다.
- 그런데 처음에 이런 내용에 대한 확인없이 일단 추도식 날짜부터 합의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추도식 날짜도 같이 합의해 놓고, 막판에 뒤엎었다고 한국 쪽에 뒤집어 씌울 수 있습니다.
- 윤석열 정부 들어 대일기조가 ‘협력’ 위주이다보니, 협상팀도 이를 의식해 최대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좋게좋게 일을 처리하려고 했을 것이고, 이는 협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 그리고 일본은 ‘강제동원’은 넣지 않고, 오히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감사’를 넣자고 요구했습니다.
- 결국 일본은 ‘사도광산’ 추도식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등재’ 축하 기념식을 열려 했던 것입니다.
동아일보 3면 그래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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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나?
-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 기조로 보면, ‘사도광산은 그것대로, 한·일 협력은 계속’이라는 형태로 분리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별도 추도식에 대한 외교부의 애매모호한 입장을 봐도 그런 조짐이 엿보입니다.
- 지금까지 일본의 모욕적인 추도식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 윤석열 정부는 특히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에 더욱 공을 들여왔습니다. 내치도 외치도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한·일 협력을 떠들썩하게 내세우려 했는데, 한·일 관계가 급랭하면 그것마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매번 약속을 어기는 일본에 대해 ‘선의’를 믿고, ‘물 반 컵’을 연신 채우고 있으나, 돌아오는 건 ‘나머지 반 컵’은 고사하고, 얼굴에 그 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한 번 속는 것은 속인 쪽이 잘못이나, 연거푸 속는다면 속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9. 사설
한겨레 = 사도광산 추도식 파국, '굴욕 외교'의 쓰린 결과다
경향 =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사태, 대일 굴욕외교의 예고된 '참사'
한국 = 사도광산 약속 어긴 일본, 뒤통수 예고에도 당한 정부
동아 =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번번이 무시당하는 우리의 선의
중앙 = 안일한 대응으로 일본에 또 뒤통수 맞은 외교부
조선 = 사도 광산 공동 추도 무산, 日本이 양국 협력 해치고 있다
- 모든 언론이 사도광산 추도식 무산에 대한 사설을 썼습니다. 대부분 굴욕외교를 당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는 일본만을 탓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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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신규채용, 6년만에 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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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Now and Then
사도섬 이전에 군함도가 있었습니다. 1940년대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으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그때도 일본은 한국인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겠다고 했으나,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는 군함도가 아닌 도쿄에 세워졌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가 버젓이 전시되는 등 약속을 어겼습니다.
오늘 노래는 영화 ‘군함도’(2017)의 OST였던 ‘희망가’(1921)입니다. 원곡은 미국 찬송가인데, 여기에 가사를 붙여 민요처럼 불렸는데,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위로하는 노래로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졌습니다. 아마 군함도에서도, 사도섬에서도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시름을 달랬을 것입니다.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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