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추가경정예산과 확장적 재정정책 때문이다.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추경'을 언급하자 기재부가 보도설명자료를 통해서 '추경 계획은 없다'고 반박하면서 일이 커졌다.
# 대통령실의 또다른 고위 관계자가 '추경은 없다'고 후퇴하면서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긴 어렵다. 대통령실이 추경과 확장적 재정정책을 선택하면 기존의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꾸는 결과여서다. 물론 대통령실이 정말로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칠까. [사진 |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충돌 타임라인=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임기 절반을 마칠 때까지 부자 감세와 긴축 재정 기조를 고수했다.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야당 의원들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지극히 이기적이고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던 10일 윤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맞았다. 경제 성적표를 펼쳐보면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정부는 모든 문제가 수출만 잘되면 해결되리라 생각한 듯하지만, 수출의 증가는 내수로 이어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 신장세는 되레 꺾였고,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 무역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러자 대통령실 익명의 관계자가 등장했다. 여러 매체는 22일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 특히 양극화 타개와 관련해서는 필요하면 추경도 하겠다." 그중 연합뉴스는 22일 이 관계자의 말을 추가로 보도했는데, 내용은 이랬다. "추경 편성 시기가 내년 초로 정해진 바는 없고, 현 정부의 건전 재정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즉시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현재 2025년 예산안을 국회에서 심사하고 있고, (기재부는) 내년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대통령실 입장을 다룬 기사를 반박했다. 대통령실의 또다른 익명 관계자는 25일 일부 매체를 통해서 "(추경을) 검토한 바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추경을 언급했는데도, 이를 검토조차 안 했다는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참고 | 승수효과 비교, 사진 |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재부는 지난 9월 세수를 재추계한 결과 올해 국세수입이 29조6000억원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세수 부족 규모는 무려 56조원이었다. 하지만 기재부는 부처 차원에서 국민에게 사과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발 '추경 가능' 보도에 즉각 반박한 것도 국회에 이미 제출한 자신들의 예산안이 '틀린 전망'을 근거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로 비칠 것을 두려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 5일 발표한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2~2026년 건전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한다"며 "코로나19 대응으로 악화한 장기재정여력을 확충하기 위해 총지출(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증가율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는 코로나19 극복 기간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잡은 탓에 조기 긴축에 들어가 경기침체에 대응하지 못했고,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여파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기재부가 경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반면 대통령실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정책 실패에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경기침체를 방어하지 못해 큰 위기가 오면 그 책임으로 정권을 넘겨주지만, 기재부 공무원들은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일할 수 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확장적 재정정책 검토가 단순 해프닝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조찬 기도회'에서는 "양극화 타개를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더라도, 현금을 뿌리는 방식을 지양할 것"이라며 "민생과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 새로운 중산층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정책적 피벗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공교롭게도 불평등은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쓸 때 그 효과를 반감시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마은성 연세대(경제학) 조교수가 국회예산정책처 연구 용역사업으로 진행한 '가계 특징을 고려한 재정정책의 효과 분석' 논문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재정정책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정부 소비 지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며 "정부 소비 승수는 기본 경제 모형에서는 1.14지만 불평등한 경제에서는 0.99에 머물렀다"고 주장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추진해온 부자 감세 기조를 그대로 이어나갈 확률이 높다.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동의를 얻어서 폐지하기로 결정한 게 11월 초의 일인 데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이어 가상자산 관련 과세도 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윤의 선택=재정정책의 효과, 특히 경기침체기에 통화정책과 함께 쓰는 완화적 재정정책의 효과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완화와 긴축을 얼마나 유연하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국제통화기금(IMF)조차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는 각국 정부에 완화적인 재정정책을 권고했었고, 지난해부터는 긴축적인 재정정책으로 정부부채 증가를 억제할 것을 권고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