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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인터내셔널가에서 목련까지 [김민철의 꽃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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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회>

29일 동인문학상을 받는 김기태 이름 앞에는 ‘한국문학의 가장 뜨거운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작가의 출현”이라는 심사평을 받았고, 이후 작품을 낼 때마다 주목을 받으며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았다. 이제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낸 작가치고는 이례적인 관심과 찬사다.

◇9편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이 소설집엔 단편소설 아홉 편이 실렸다. 공통점이 있다면 현실적인 소재와 주변에서 본 듯한 평범한 인물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것도 쓸 수 있구나’,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롤링 선더 러브’는 일반인 데이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이 겪는 이야기, ‘보편 교양’은 입시 위주의 제도 하에서 교육을 고민하는 고교 교사의 이야기다. ‘전조등’은 이런 작가의 스타일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 이 소설 주인공은 그가 쓴 ‘네모나지도 둥글지도 않은 안경’처럼 특별히 모나지 않는 삶을 사는 가장이다. 안정적인 직장,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 교양 있고 예의바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이 연극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깊이인 것 같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를 대중가요와 인터넷 유행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미있게 쓰면서 삶의 의미를 담는, 소설의 한 장르를 개척한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등단 직후 김애란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조선일보

화제의 신작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작가 김기태가 2024년 5월 15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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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진주와 고려인 가족 출신인 니콜라이라는 가난한 변두리 연인들 이야기다. 두 사람은 중학교 교무실에서 같이 흰 봉투를 받으며 처음 마주했다. 봉투 안엔 돈을 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진주는 기회균형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해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고, 니콜라이는 특성화고를 마치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니콜라이가 한국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연소득 3800만원은 아직 먼 얘기다.

둘은 경기 동남부의 한 도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둘은 연락할 때 엄지를 치켜든 개구리, 펭수 이모티콘이나 ‘묻고 더블로 가!’,’군침이 싹 도노’ 같은 인터넷 밈(meme)을 주고받는다. 둘은 동네친구에서 밥친구로 지내다 동거하는데 소설은 큰 사건없이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재미있는 표현이나 밈이 등장해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터내셔널’이 들어가는 특이한 제목은 국제노동자의 노래인 인터내셔널가에서 따온 것이다. 진주가 주말에 방에 누워 있다고 하자 니콜라이가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그러자 진주는 구글에서 이 문구의 유래를 검색해 독일 시인 브레히트에 이어 ‘인터내셔널가’에 이르고 이 노래를 자주 듣게 되는 식이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목련

그의 소설에선 꽃이나 나무, 식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롤링 선더 러브’에 맹희가 올린 블로그 포스팅 중 하나가 ‘보도를 덮은 은행잎’이고 ‘보편 교양’에서 주인공 교사의 책상에 ‘저녁 산책을 하다 구입한 스투키’가 놓여 있는 정도다. 그럼에도 김기태 소설에서 공통적인 꽃을 찾으면 목련이었다. 그의 단편 곳곳에서 목련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진주와 니콜라이가 중학교 때 흰 봉투를 받으러 처음 교무실에 갔을 때 목련이 피어 있었다. 목련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목련임이 분명하다.

<교문에 들어서서 걷는 길에는 흰 꽃이 피는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몰랐으나 때가 되면 바람에 흩날리는 희고 풍성한 꽃잎들은 기억에 남았다. 그런 따뜻한 봄날의 오후였다. 두 사람은 교무실에 나란히 섰다. 3학년이 되어 처음 같은 반에 배정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담임교사는 두 사람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흰 봉투를 줬다.>

조선일보

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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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교양’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아래 글에 나오는 ‘하얗고 부드러운 꽃잎들’은 목련 꽃잎일 것이다.

<4월이 되자 완연히 따뜻해진 날씨에 꽃나무들이 만개했다. 고전읽기 교실은 2층이라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하얗고 부드러운 꽃잎들을 손으로 만질 수도 있을 듯했다. 교실 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고 있는 학생들이 한가득 보였다. 곽은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감사하려고 했다.>

‘롤링 선더 러브’에서 담당 피디는 속마음 인터뷰를 딸 때 ‘펜션 뒷마당의 풍성한 목련나무 아래’에 주인공을 앉혔고, ‘로나, 우리의 별’에서 케이팝 스타 로나가 낸 정규 2집 앨범 제목이 ‘목련’이고 로나의 열성 팬 중 하나는 ‘목련러너’였다.

이처럼 그의 소설 곳곳에 목련이 많이 나오지만 이 목련이 소설 속에서 주요 소재나 상징으로 쓰인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자주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목련은 주변에 흔한 꽃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평범한 꽃인 목련도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우리가 도시 공원이나 화단에서 흔히 보는 목련의 정식 이름은 백목련이다. 백목련은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자라긴 했지만, 중국에서 들여와 관상용으로 가꾼 것이다. 이름이 ‘목련’인 진짜 목련은 따로 있다. 더구나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자생하는 우리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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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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