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79)은 '일본의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로 불린다. 정치·경제·국제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해외 네트워크로 역대 총리마다 미국과 중국 관련 조언을 수시로 요청한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생전 19번에 걸친 인터뷰를 정리한 '숙명의 자식'이란 책을 펴냈다. 미국 트럼프타워에서의 아베-트럼프 회동부터 위안부 협상 타결,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이르기까지 외교 막후 비화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 300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올봄에는 직접 방한해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직접 취재했다.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아베 전 일본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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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밀월' 관계였던 아베-트럼프의 51번에 걸친 회담(전화 회담 포함)을 일일이 확인해보니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험악한 분위기의 이야기들이 많았다"고 했다. 미국에의 투자를 촉구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이려는 트럼프의 공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아베 또한 수비에 치우치지 않고 트럼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두뇌전을 벌인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트럼프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직접 김정은에게 세 번이나 언급하도록 한 것도 그 결과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모두가 트럼프 2기에 대해 '큰일이다', '4년을 어떻게 견디나'고 한다"며 "하지만 한국, 일본, 호주, 유럽이 손잡고 트럼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아베가 남긴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23일) 70분간 전화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2기'의 전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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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 두들겨맞고도 승리했다"에 트럼프 반색
이번엔 한일이 "당신이 한·미·일 창시자"라고 치켜세울 차례
한·미·일 틀 어떻게 짜느냐에 분담금, 주한미군 철수 좌우
트럼프 고립주의 막기 위해 보호주의 동조 어느 정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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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의 실력자 3인
Q : 트럼프 2기의 특징은 뭐라고 보나.
A : 반중 매파다. 관세 부과를 통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더욱 가속하려는 면면들이 포진됐다. 또 일론 머스크 등 갑부들이 내각에 상당수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은 중국 커넥션이 있다. 미 정부 차원에선 중국에 대한 엄격한 대응을 동맹국들에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중국과 뒤로 손을 잡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그널이 나와 불협화음을 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Q : 트럼프 2기 최고 실력자를 꼽는다면.
A : 1번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다. 그녀는 트럼프의 정치 일정을 완전하게 장악했다. 적어도 앞으로 1년, 혹은 중간선거(2026년 11월) 전까지는 가장 파워를 가질 것이다. 넘버 2는 일론 머스크. 단 향후 1년 정도다. 넘버 3은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다.
Q :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이시바 일본 총리 모두 트럼프와의 조기 회동에 실패했는데.
A : 중국 고사에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다'란 말이 있듯 2기에는 '난 이제 그렇게 간단히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란 트럼프의 생각이 이미 드러났다. 한국·일본·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주니어 등을 통해 다양한 작전을 폈지만 모두 실패했다. 장남(트럼프 주니어) 혼자 힘만으론 안 됐다. 지금 상황으로만 말하자면 그걸 해낼 수 있는 건 일론 머스크 말고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새벽 대선 승리 연설을 하면서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을 소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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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의 '트럼프 띄워주기' 필요
Q : 트럼프는 취임 후 바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까.
A : 1기 때보다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자신들의 '대미 억지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대우를 요구하며 강하게 나올 것이다. '얕보지 마라'고 나올 텐데, 정작 트럼프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자신이 한마디 말만 걸면 김정은은 (협상에) 바로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생각의 차이 때문에 북미 간 간극이 벌어질 것이다.
Q : 한국에선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
A : 한·미·일의 협력 프레임을 트럼프에게 얼마나 빨리 어떻게 각인시키느냐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 문제,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연동돼 움직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 입장에선 어떻게든 트럼프가 파괴적으로 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한·미·일 정상회담을 만든 게 누굴까. 많은 이들이 바이든 현 대통령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트럼프 1기 때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상태라 황교안 총리가 참석한 게 처음이었고, 이후 문재인 정부 때 두 번 더 있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에 '당신이 한·미·일 정상회담의 창시자다. 바이든은 다만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통해 계승했을 뿐이다'라고 하면 트럼프는 움직인다. 그는 '내가 오리지널'이란 걸 가장 중시하는 인물이다. 한국과 일본이 그걸 칭송해주면 된다.
Q : 한국 내에선 트럼프의 분담금 주장을 다 들어주는 대신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잠재적 핵 능력을 확보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A :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전술적으로 그런 딜을 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한국이 국가적 의지로서 잠재적 핵 능력을 염두에 두고 그런 행동에 나선다면 고립될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국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단계에서 그렇게 하는 게 한국에 득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Q : 트럼프가 핵우산으로 한국을 언제까지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그 배경일 듯 한데.
A : 이해는 한다. 그렇다면 대만 유사시에 한국은 뭘 할 것인가란 문제와 함께 해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을 분명 투입할 것이다. 트럼프가 '알았다. 핵우산은 확실히 한국에 제공한다. 다만 대만 유사시에는 (한국도) 함께 해 줄 것이지?'라고 나올 수 있다.
후나바시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으로 중국은 벌레라도 씹은 느낌일 것"이라며 "하지만 중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이기지 않는 것이므로 북한군 파병을 일정 수준은 인정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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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주의 동조'라는 전략적 계산
Q :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예상하자면.
A : 트럼프는 모든 국가에 10~20%의 일반관세를 부과하기보다 우선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이어 동맹국과 서방 국가에 '너희들도 동참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할 것이다.
Q : 그 경우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할까.
A : 한·일 모두 중국 무역의존도가 20~30%에 달한다. 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모두 중국에 당하는 판인데 어찌할 거냐'며 강하게 압박을 가해 올 경우 '아, 그건 WTO 위반이니 우린 못 한다'고 언제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또 모두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다. '폭군(트럼프)이 저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중국에 관세를 매기는 국가, 산업계가 분명 나온다. 특히 자동차나 반도체 산업을 지닌 국가의 생각은 미국과 같다.
Q :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맞나.
A :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민족주의·보호주의·고립주의라는 4개의 큰 현상이 있다. 트럼프는 이 4개를 다 갖고 있다. 이 중 가장 무서운 건 보호주의가 아니라 고립주의다. 물론 보호주의도 무섭지만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트럼프의 보호주의에는 어느 정도 동조함으로써 가장 위험한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막는다는 전략적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와 있다.
Q : 한국과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나.
A : 1기 때보다 더 강하게 '그린필드 투자(미국 내 공장 건설 투자)'를 압박할 것이다. 제조업이 기반인 한국이나 독일, 일본에 대해서 더 심할 것이다. 심지어 중국에 대해서도 '관세는 때리지만 그린필드 투자는 좋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자동차가 그렇다. 이 경우 '미국의 경제안보정책은 과연 뭐란 말이냐'란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뒤죽박죽될 것이다.
2016년 11월 17일 트럼프타워에서 이뤄진 아베-트럼프 회동.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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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본은 트럼프 1기 때 이런 압박을 잘 피해갔는데.
A : 아베의 흉내는 앞으로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타워에서의 대화는 인상적이었다. 아베는 먼저 '당신과 나와 공통점이 있다. 뉴욕타임스에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는데 그걸 깨부수고 록키처럼 이겨냈다(아베는 뉴욕타임스로부터 보수색채 짙은 역사관을 비판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트럼프는 폭소를 터뜨렸다. 당신과 난 '동지'란 걸 각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아베는 트럼프를 만날 때마다 미국 지도를 갖고 갔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여기여기에 일본 기업이 투자한 공장이 새롭게 생겼다. 그리고 고용도 이 만큼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7개 경합 주에 대해선 더욱 세밀한 지도를 준비해갔다. 난 이게 가장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본다. 이게 가능한 나라는 일본과 한국, 독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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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파병에 벌레 씹은 느낌의 중국
Q : 트럼프는 취임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A : 트럼프는 대중 관세와 우크라이나 문제에 가장 먼저 달려들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조기 정상회담을 마련하려 할 것이다. 다만 휴전협정은 매우 어렵다. 얼마 안 지나 휴전협정이 깨질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Q : 북한이 굳이 미 대선 전에 파병한 이유는.
A : 비싸게 몸값 받을 시기를 택한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란 시나리오 아래 러시아와의 준동맹 관계를 굳히려는 독자외교였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으로선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파병했다고 본다.
Q : 이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은.
A : 벌레라도 씹은 느낌일 것이다. 평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 잔뜩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몰아세우진 않는다. 왜냐면 중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이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 유사시에 러시아와의 협조 체제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이 러시아에 일정 수준 파병하는 건 허용한다.
Q :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앞두고 할 수 있는 건.
A :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손을 댈 때 한·일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휴전 협정체결 때 안전보장 부분은 나토가 중심이 되겠지만, 전후 복구 부분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협력해 청사진을 만들 수 있다. 자금뿐 아니라 전문가와 기업,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와 자이카(일본국제협력기구) 등이 공동으로 일·한 공동팀을 만들어 재건 협력에 나설 경우 휴전의 주인공인 트럼프는 매우 적극적으로 한미일의 틀에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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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일본 국빈방문이 관건
Q :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A : 일본이 국빈으로 윤 대통령을 초청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해 온 것에 일본은 감사와 경의를 갖고 있다. 이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많은 이들이 기대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같은 건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너무 언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선 좌파, 일본에선 우파가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6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이 전 세계적 대변혁의 시기에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막기 위해 시급한 문제들을 손잡고 분명하게 해결해나가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후나비시 전 주필이 펴낸 신저 '숙명의 자식'.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일대기 형식으로 꾸며졌다. |
Q : 이번에 신저 '숙명의 자식'을 펴내며 아베는 어떤 정치인, 어떤 인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나.
A : 일본 및 세계가 직면한 최대 과제, 즉 파워균형의 변화나 전후 체제의 붕괴, 민주주의의 위기, 디플레로부터의 탈출, 저출산 문제 해소 등 피해갈 수 없는 과제들에 정면으로 부딪쳐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 의미에선 큰 정치를 한 인물이다. 정치인다운 정치인이었다는 느낌이다.
김현기 논설위원 |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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