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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함영준의 마음PT] ‘도통한 사람’ 있다 해서 산골 찾아가 만나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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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은 노인이 있다고 해서 충청도와 경상도 접경 산촌 동네를 찾아갔다. 평소 명상과 영성에 관심 많은 사업가 지인 2명과 함께.

그 ‘도인’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 이는 “그분 성정이 독특하니 유의해달라”고 신신당부했으나, 평생 각양각색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터라 별로 걱정은 안 했다.

조선일보

단풍이 짙게 물들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자연 풍경에서 질서정연한 계절의 섭리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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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성공한 사람이건, 도통한 사람이건 나는 두 가지는 주의 깊게 본다. 첫째 성정이 괴팍하든, 기이하든, 인간미나 진정성이 느껴지냐는 점이다. 이 느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온다.

둘째 아무리 훌륭한 경륜의 소유자로 평가받는 이라도 “내가 최고다”, “내가 다 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아니올시다이다. 이 세상엔 작은 성공으로 교만하고, 작은 경험을 진리라고 착각하는 소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인의 인상은 평범했다. 그러나 주장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인간의 내면의식부터 심리학, 물리학, 역사, 철학, 의학, 종교, 우주론, 영적세계에 이르기까지 막힘없는 자기 이론과 주장을 폈다. 우리나라를 비롯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예언’했다.

문제는 그런 주장을 펴게 된 근거나 논리, 또는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과정에 대해 어떤 조심스러운 의문도 용납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됐느냐”고 하면 “내 책을 보면 다 나와 있다”, “그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 있냐”는 호통이 돌아온다.

그는 성철스님, 달라이 라마, 부처, 성경을 비판하며, 한국을 비롯 전세계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지구도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을 뿐 곧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기만이 최고라는 뜻이다.

그를 소개한 이는 학식이나 경륜이 녹록하지 않은 분인데도 마치 스승 대하듯 노인을 극진하게 모셨다. 이 분야에서 성공한 ‘하늘궁’ 교주 허경영의 집이 문전성시라는 기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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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이자 베스트셀러작가, 영적 지도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1927~2012). 한국에도 온 적이 있는 그는 ‘가짜 스승’들은 무엇보다도 진실성과 겸손함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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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가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이른바 구루(guru·영적 스승)라는 소리를 듣는 종교지도자나 교주들 중에서 사이비를 고르는 기준을 두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첫째는 진실성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어제 한 얘기와 오늘 한 얘기가 같으냐는 점이다. 둘째는 겸손함. 즉 자기를 신성시하거나 절대숭배하는 것을 금하느냐는 점이다. 이 두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짜스승이다.”

무지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좌절된 ‘에고’로 가득 차 있는 노인이었다.

원래 ‘에고(ego·자아)’란 100여년 전에 프로이트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드·id)를 현실적으로 조절해 주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으나, 개인주의가 심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즉, ‘나’라는 존재를 과대평가하고, 지나치게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의 연결성을 간과하는 속성을 말한다.

이처럼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감정, 욕망을 가지고 있는 에고이스트들은 사실 서울에 넘쳐난다. 그것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몰려 있다. 그들은 이 노인처럼 ‘내가 최고요, 내 말이 진리며, 내게 이의를 다는 자는 악’으로 본다.

지금보다 훨씬 후진적인 1980~90년대 만난 정치인들은 최소한 겉으로는 법과 민심, 여론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보였으나 지금은 모두 제 잘난 세상이요, 제게 동조해 주지 않으면 다 무시해 버린다.

모두들 제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들로 꽉 찬 서울을 떠나 모처럼 시골에 은거한 도인을 만나 한 수 배우려고 했는데… 가슴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조선일보

요즘 시골은 풍요로워져서 감이 익어도 따지 않고 관상용으로 남겨 놓는 집들이 많다. /마음건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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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주변을 둘러보니 첩첩산중에 늦가을 단풍이 짙게 물들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촌 풍경. 그 한적하고 소슬한 모습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섭리와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내 마음만 번잡할 뿐 이렇게 바깥은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다. 감나무에 수북한 감은 따지도 않은 채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바로 이때 명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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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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