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바라키현의 가사마 사쿠라 골프장. 사진 가사마 사쿠라 골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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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골프장을 32일간 취재하고 왔다. 이바라키 현 가사마 사쿠라 골프장의 그린피는 1600엔(약1만4500원)이었다. 잘 못 쓴 게 아니다. 1만4500원이 맞다. 다소 허름한 시골 동네 골프장인데다 평일 아침 6시대 한정이지만 정규 18홀이고 카트비까지 포함된 가격이었다. 더 좋은 시간, 점심 식사가 포함된 이용료는 2900엔(약 2만6000원)이었다.
민형배 의원 등이 지난 달 “대중형 골프장 코스 이용료(그린피)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고자 합니다”라면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역시 민형배 의원 대표발의로 지난해 생긴 골프장 분류 변경(대중제를 고급 대중제와 일반 대중제로 나눔) 및 가격 규제를 보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이번 개정안은 일반 대중제 골프장을 타깃으로 했다. 현재 대중형 골프장은 평균 그린피 기준으로 정부고시 가격을 넘어선 안되는데, 개정안은 최고액 기준으로 고시가격을 넘지 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일본을 취재하면서 일종의 사치제인 골프장 그린피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매우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일본 버블 시기 당시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 넘던 럭셔리 코스 그린피가 지금은 20만원 안팎이다. 골프장들은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가격 정책을 쓰고 있다. 그래서 1만4500원짜리 그린피도 나왔다.
우리도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 코로나 시절 골프를 하던 MZ 세대가 비싼 비용을 견디지 못하고 테니스와 마라톤 등으로 옮겨갔다. 골프 용품과 의류 매출은 30~50% 줄었다. 그린피도 지방을 중심으로 내려가고 있다. 한국 골프장들은 대체재인 일본 골프장 그린피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가격 통제는 공급 위축, 암시장 증가, 품질 저하, 기업 행동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건 상식이다. 가격 규제를 하게 되면 골프장업주들과 부킹업자 등은 규제를 피하는 꼼수를 만들고, 이를 막을 또 다른 규제가 생기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다. 최종적으론 골퍼들이 피해자가 된다.
골프장 이용 요금을 정부가 정해준다는 정책의 폐해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법안 발효 후 지방 골프장 그린피는 정부 고시가격에 따라 오히려 올라갔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린피가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또 새 규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가격 규제를 받지 않으려면 퍼블릭 골프장들이 비회원제로 가면 된다고 하겠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퍼블릭은 자기자본과 차입금으로 골프장을 만들어 영업한다. 회원제에 비해 금융비용이 훨씬 많다. 세금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법안에 의해 비회원제가 된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은 최근 세금을 견디기 어려우니 회원제로 전환하게 해달라며 문체부에 탄원서를 썼다. 골프 대중화 취지와 달리,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고급 퍼블릭 코스가 회원제가 되겠다는 모순이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엔 대중제가 회원제로 전환할 수 있는 법안도 없다. 페블비치에 비견되는, 4000억원을 들여 만든 한국 대표 퍼블릭 사우스케이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가격 규제 법안은 한국 골프장을 하향평준화로 몰고, 성장 가능성이 큰 K-골프를 사장시킬 것이다. 골프장은 호텔과 비슷하다고 본다. 침대만 있는 호텔도 있고, 수십평 럭셔리 호텔도 있다. 각자 사정에 맞는 호텔을 찾아간다.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티타임 7분 간격 골프장과 10분 간격 골프장을 같은 잣대로 규제하는 게 말이 되는가.
위헌 요소도 많다. 학원비 상한제도는 대부분 위헌 판결을 받았다. 공교육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교육도 그런데 취미 활동인 골프 그린피를 정부가 정해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격을 정해주지 않고도 수요 공급 조정으로 가격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첫째 정부나 지자체가 공공 골프장을 많이 만들면 된다. 미국은 지자체가 만든 골프장이 전체 골프장의 17%, 약 2500개다. 골프장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공급이다.
두 번째 방법은 기업 법인 카드를 골프장에서 쓸 수 없게 하는 거다. 일본은 2004년 금지한 이후 그린피가 내려갔다. 그러나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기업 간부와 이틀 연속 골프를 친 의원이 이런 법안을 낼지는 의문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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