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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올겨울 독감 예방접종 마음 먹은 이유 [강석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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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감 바이러스 사이의 유전물질 교환으로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가 생겨난다. 올해 북미 젖소를 감염시킨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운데)는 5가지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조합돼 2020년 탄생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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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짧은 가을도 끝나고 이번주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그동안 미뤄오던 독감(인플루엔자 또는 플루) 예방접종을 이번주에는 꼭 해야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독감이 유행하지 않을 게 뻔해 안 맞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작년까지 4년이나 건너뛰었다. 올해는 왠지 안 맞으면 독감을 세게 앓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독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건 지난주에 나온 한 뉴스 때문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병원에 입원한 청소년 얘기로, 조류독감에 걸려 폐가 상해서 중태인데 감염 경로를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체액 시료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게놈을 분석한 결과도 복잡하다는 내용이다.



조류독감은 말 그대로 새가 걸리지만 드물게 사람도 걸린다. 대부분 감염된 새와 직접 접촉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와 걸리는데 가벼운 증상에서 사망까지 다양하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 가운데 H5N1에 지난 20여년 동안 지구촌에서 900여명이 감염돼 400여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지난봄부터 최근까지 북미에서 젖소 100여마리가 조류독감에 걸렸고 관련 종사자 50여명도 감염됐다. 2020년 등장한 H5N1 바이러스의 하위 유형이 병원체로, 다행히 대부분 결막염이나 가벼운 호흡기 질환 등 경증이었고 착유기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은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침투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조류독감에 걸린 캐나다 청소년은 가축과 접촉한 적이 없고 주변 사람들은 음성이라 감염 경로가 미궁이다. 게놈 분석 결과 감염된 H5N1 바이러스의 일부에서 변이가 일어나 침투성과 증식력이 커져 폐로 번져 중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북반구에 독감이 유행하면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독감 바이러스를 만나 유전자를 교환해 전파력을 얻는 가능성이다. 이렇게 생겨난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면 캐나다 청소년처럼 면역력이 강한 젊은층에서 오히려 큰 피해가 날 수도 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15년 전인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라고 불린 독감은 멕시코에서 인간독감 바이러스와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만나 생겨난 신종 바이러스가 병원체다. 당시 부랴부랴 백신을 만들고 마침 제품화된 치료제도 있어 예상보다는 적은 피해로 지나갔다.



H5N1 조류독감이 팬데믹으로 갈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되더라도 속수무책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감염된 인체 조직에서 채취한 이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조류독감 백신이 개발돼 있고 몇몇 나라에서는 비축해뒀기 때문이다. 올해 북미에서 젖소를 감염시킨 H5N1 바이러스는 변이가 생겨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난 7월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여전히 항체 형성은 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사 생각지도 못한 조합의 바이러스가 등장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이번에 유행할 가능성이 큰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를 표적으로 한 백신을 맞고 나서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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