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더 독해질 美 보호무역… K철강 내년도 쉽지 않다 [심층기획-트럼피즘에 조기경보 켜진 K산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⑥ 침체 장기화 철강·석유화학

대미수출 2018년 이후 반등 못해

쿼터규제 ‘불확실성’도 변수로

2018년 이후 철강 美수출 반토막

美 무역확장법 활용해 쿼터 규제

국내 건설업도 부진 반등 불투명

석유화학, 수익성 악화 지속 불구

美 ‘화석연료 귀환’ 선언 호재로\

유가 하락으로 실적 개선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완성한 내각 진용을 관통하는 대표 키워드는 ‘미국 우선주의’다. 이런 미국 차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정책이 한국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이 많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주력 수출품이면서 다른 산업에 중간재로 두루 쓰이는 철강과 석유화학 제품 시장의 불확실성이 유독 크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째 침체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 철강 산업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다. 26일 한국철강협회와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의 철강 무역 모니터링 결과 등을 보면 한국의 대미 철강재 수출량은 2015년 400만t 가까이에서 2018년 이후 200만t대로 떨어진 뒤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일보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1용광로에서 현장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 1기 당시인 2018년 도입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미국은 한국산 철강 수입량을 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인 약 383만t의 70%로 쿼터를 적용했다. 올해까지 대미 쿼터가 250만t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세계적 수요 침체와 공급 과잉 문제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저가 철강 제품을 앞세워 중국이 유발한 가격 하락은 한국 철강 업체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철강 수출은 이미 232조로 관세에 상응하는 쿼터 규제가 있어서 이를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변형할지 현재로서 예측할 수 없다”며 “현재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어 관세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권 정책의 보호무역기조가 심해서 철강 수출에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산업 중간재 철강·석유화학… 정책 불확실성에 우려 커져

철강 업계 관계자 역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국내 철강 업계에 미칠 영향도 긍정적일 여지는 적어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날 “그나마 기회요인이라고 볼 요소는 중국인데, 이미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거의 없다”며 “만약 중국산 수입 규제가 더 포괄적으로 강화돼 한국산 철강을 소재로 쓰는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우리가 그 틈을 노릴 수는 있겠으나, 만약 한국산 철강이 들어가는 제품이 미국의 수입장벽에 막히면 우리나라까지 불리해질 여지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232조를 자동차 등 다른 산업으로 확대하자는 얘기가 미국에서 나오는데, 중간재인 철강 특성상 자동차나 가전 등에 수입량 제한을 걸어버리면 우리나라 철강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산과 경쟁하는 어떤 제품이 트럼프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우리가 받는 영향도 달라질 텐데, 현재로서는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일 확률이 더 크지 않을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년 세계 철강재 수요가 올해에 비해 상승할 것으로 점쳐진다는 것. 철강 생산량을 조정하지 않던 중국 철강 업체들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떨어지면 정보기술(IT) 산업 설비 등의 투자가 늘며 철강재 수요도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 수요 증가 추세가 국내까지 이어지기에는 시차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건설·설비 투자가 모두 안 좋았던 탓에 내수 철강 수요 자체가 워낙 줄었고 올해 수입량도 감소가 예상된다”며 “내년에도 그 기조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과 자동차 생산량이 많아서 그나마 철강이 버텼지만 내년에도 두 산업의 생산 증가율이 올해만큼 받쳐줄지 의문”이라며 “국내 건설 투자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아서 내년보다는 그 이후 반등 여지를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자율 구조조정 유도설까지 나온 석유화학 산업 전망은 어둡다. 다만 ‘화석연료로의 귀환’ 움직임을 보이는 트럼프 당선인 행보에 따른 유가 하락 가능성은 긍정적 요인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수요 침체에 더해 원가 상승이 수익성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석유화학 2위 수출국으로, 올해 9월 기준 전체 석유화학 수출액의 8.4%를 차지한다. 수출물량을 기준으로 2020년 전체 석유화학 수출량의 4.6%를 차지하던 대미 비중은 올해 8.7%까지 성장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 후 석유화학 산업은 수혜 입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유가 하락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가능성을 이유로 꼽았다.

황 연구원은 “미국이 셰일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낮추면 일차적으로 수혜를 얻는 산업은 석유화학인 데다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에 가했던 경제 봉쇄를 풀면 러시아산 저렴한 나프타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생산 단가 하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제품 원료인 나프타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통해 25∼30%가량 수입했으나 전쟁 발발 후 중동으로 수입처를 바꾸며 구매가와 운송비 모두 오른 상태다.

석유화학 산업 실적이 내년에 올해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황 연구원은 “향후 유가가 떨어지고 금리 완화 효과 등으로 전 세계적 구매력이 개선되면 그때 화학 제품 구매 수요가 복원되는 흐름으로 예상한다”며 “그 시기는 내년 하반기에서 그 이후가 되지 않을까 본다”고 전망했다.

다른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제품의 자급률 상승 등으로 국산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 본다”고 했다. 그는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이 치고 올라오면서 우리나라는 ‘스페셜티’(고기능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스페셜티는 특성상 필요한 곳에 맞게 쓰여 수요처가 많지 않아 고부가가치 제품인 만큼 자체적인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