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
옛날 장주(莊周)란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는 스스로가 그런 줄 알고 장주인 줄 몰랐다. 잠시 뒤 잠에서 깨보니 놀랍게도 장주였다.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중국의 고전 '장자'에 나온 우화로, 여기 등장하는 장주가 바로 장자다.
1990년에 개봉한 영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 퀘이드는 매번 또 다른 세계,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꿈을 자주 꾸자 '리콜'이라는 여행사를 찾아간다. 이 여행사는 실제 여행이 아닌, 뇌에 자극을 주어 여행의 기억을 심어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퀘이드는 기억을 심던 도중 갑자기 깨어나 자신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고 화성으로 가서 공기를 통제하며 폭정을 일삼던 세력과 싸워 화성의 대기를 복원한다. 영화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 화성을 배경으로 끝이 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여행사 이후 이야기가 실제인지 아니면 여행상품인지.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 사이의 희미한 경계를 즐기는 듯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 경계를 탐구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다. 주지하듯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 즉 세계의 합성어다. 사용자는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와 같이, 현실과 상호작용하며 활동한다.
몇 년 전 메타버스 광풍이라고 하리 만큼, 이곳저곳에서 메타버스를 제작했다. 기업, 기관, 단체가 메타버스에 연달아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 대부분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루 방문객 200여 명, 재미도 의미도 없고 돈도 벌 수 없는 공간 누가 머무나"라는 언론의 질타가 뼈아프다.
한창 메타버스가 주가를 올리고 있던 2021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도 메타버스를 시작했다. 제페토의 '힐링동산'(Peaceful Hill)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박물관 메타버스와 달리 힐링동산에는 박물관 건물이나 전시관이 없다. 너른 언덕과 동굴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있을 뿐이다. 주요 퀘스트는 아이템을 모아 반가사유상을 깨끗이 하고 동굴로 들어가 다른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것이다.
처음 힐링동산에 들어갔을 때, 과연 여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담당자에게 묻자 한 달 사이에 23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힐링동산의 성공 이유를 되짚어 본 적이 있다. 메타버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서비스의 핵심은 재미와 보상이라고 말한다. 힐링동산에서 반가사유상 따라하기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밈이 되어 유행했고, 메인 퀘스트를 마치면 주는 반가사유상 모형은 박물관 문화상품만큼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 힐링동산은 그런 점에서 재미와 보상을 모두 충족시켜 주었다.
힐링동산이 다른 메타버스와 운명을 달리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메타버스 이용 현황 및 이용자 특성 조사(2022)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4.2%에 불과했다. 그리고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0세 미만이 20.1%, 10대가 19.1%였을 뿐 20대는 8.2%, 30대는 3.1%로 감소했다. 이는 메타버스 이용자 대부분이 미성년자임을 보여준다. 힐링동산은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퀘스트 진행을 단순화함으로써 이런 연령대의 특성을 정확히 겨냥했다.
메타버스는 사람을 모으는 기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또 다른 세상이다. 단순히 현실을 복제한 공간은 오프라인 문법을 온라인에 적용한 것일 뿐 감흥을 주기 어렵다. 메타버스의 성공은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하고, 이용자 특성을 이해한 콘텐츠로 그들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있다. 금주 힐링동산의 누적 관람객이 2,700만 명을 돌파했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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