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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고객 3천만원 보이스피싱 막은 은행 직원...“악을 물리치는 건 초능력 아닌 성실” [기자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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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올린 한 미담 기사가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주목받았다.

한 은행 지점을 방문한 고객이 입금을 거절당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예금팀 계장 A씨는 일단 고객이 2985만원이라는 거금을 전부 돈다발로 가져온 것을 수상히 여겼고 표정에서도 불안감을 포착했다.

A씨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고객이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특징을 가졌다는 점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전날 이미 4720만원의 사기를 당했다는 점은 안타까웠지만, 계좌 일괄 지급정지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하면서 추가 피해를 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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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연합뉴스]


이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서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은행원의 기지를 칭찬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자극적인 내용이 없는데도 기사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 사람의 성실함이 누군가를 구하는 순간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계장 A씨가 고객의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친 게 아니다.

그저 은행에서 수년간 근무하는 동안 몸에 쌓인 ‘암묵지’를 발휘해 고객의 이상행동을 알아챘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업무 밖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은행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고객을 사기범의 손에서 벗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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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예금창구 [연합뉴스]


우리는 종종 세상이 너무 악하다고 느낀다.

순수한 사람을 등쳐 먹는 범죄자가 떵떵거리며 잘산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러다 세상의 불공정함에 치를 떨어봤자 바뀌는 게 없다고 체념하기도 한다.

마스크를 쓴 각종 히어로가 21세기에도 꾸준히 호응을 얻는 원인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초능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무기력감의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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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조커 [해리슨앤컴퍼니]


그러나 A씨의 사례는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꼭 초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이다. 막강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직업윤리를 지키며 제 할 일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찰력을 가지고 한 번 더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 각자의 성실함이 사회 곳곳을 비출 때, 악은 더 이상 자기 자리가 없다고 무기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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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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