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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4대 그룹 인사(人事),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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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사견(思見)]

머니투데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4.11.17/사진제공=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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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는 기업의 방향성과 철학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메시지다. 변화냐 안정이냐, 혁신이냐 균형이냐를 판가름하는 기업의 의지를 잘 드러내는 창이다. 누구를 어떤 자리에 앉히느냐가 세상에 전하는 그 기업의 의지다.

최근 대한민국 주요 대기업들의 인사 발표는 각 그룹의 미래 전략과 조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특히 4대 그룹(SK그룹은 지난해 기준)의 사례는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축으로서 이들이 어떤 길을 택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올해 현대자동차 그룹의 인사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외국인인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한 것은 현대차의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신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현대차는 과거 '현대맨' 중심의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의 일원으로서 폭넓은 관점과 다양성을 수용하고 있음을 인사를 통해 입증했다. 과거 C레벨에 외국인들을 대거 채용했다가 실패했던 타 그룹의 사례가 있어 무뇨스 차기 CEO의 성공 가능성은 켜봐야 할 문제지만 이런 변화의 시도자체만으로 이번 인사는 큰 의미를 갖는다.

현대차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CEO의 국적변화가 아니라 기업 운영의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 시장 중심에서 세계 시장 중심으로, 지역적 사고에서 글로벌 사고로 전환하는 것으로 다른 기업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LG 그룹은 올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LG유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사장들 대부분을 유임시키며 선택적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구광모 LG 회장이 중점을 둔 ABC(AI 바이오 클린테크) 분야에서 전체 승진 임원의 28%를 발탁해 어디에 힘을 집중할 것인지를 보여줬다. 이번 인사는 지난해 LG의 2인자로 불렸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의 퇴진 등 인적쇄신의 마무리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선대회장이 임명했던 6명의 부회장 중 매년 1명 이상씩 퇴임시키면서 마지막으로 지난해 권영수 부회장을 2선으로 물렸다. 이로써 선대에 임명된 부회장 전원을 교체한 것이다. LG의 경우 그룹의 '넘버2'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지주회사 공동 대표이사의 근속연수가 다른 기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짧다. 고 구본무 회장 시절 조준호 사장, 하현회 전 부회장이나 구광모 회장 시절의 권영수 전 부회장이 약 4년을 일했고, 현재 권봉석 부회장은 올해 3년째다.

LG유플러스의 수장을 ㈜LG의 홍범식 사장으로 교체한 것으로 그룹 인사를 마무리한 것은 지난해까지 이어진 대대적인 변화를 마무리하고, 과감한 혁신보다는 내부 역량 강화를 우선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달 5일 사장단 인사가 예정돼 있는 SK의 경우 지난해 대대적인 변화로 인해 올해는 CEO급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감지된다. SK의 경우도 지난해 그룹의 2인자인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오너가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맡아 조직 재정비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조대식 부회장 외에도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내려놓으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은 쇄신이라는 최태원 회장의 강한 의지를 인사로 보여준 것이다. 올해 지주사인 (주)SK와 주력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에선 CEO의 큰 변화가 없겠지만 임원의 슬림화에 나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SK는 반도체·에너지·배터리 등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주요 산업군에서 핵심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 위기 극복의 강력한 메시지가 인사를 통해 시장에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전자계열을 중심으로 이틀에 걸친 사장단 인사를 이어갔다. 27일 인사에서는 한종희-전영현 투톱체제의 유임을 통해 세트와 부품의 안정을 기하면서도 초격차 경쟁력에 흠집이 난 반도체 부문에 대한 '핀셋인사'를 통해 변화를 모색한 것이 눈에 띈다. 게다가 전문경영인으로는 첫 여성 CEO인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을 임명한 것은 조직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다만 27일 인사에서는 변화의 의지가 상대적으로는 부족했다는 인식이 강했다. 빠른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혁신기업인 삼성이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여전히 법적리스크를 안고 있는 삼성의 현실을 반영했더라도 아쉬운 대목으로 읽혔다. 그러나 뒤이은 28일 인사에서 최윤호 삼성SDI 사장을 신설된 삼성글로벌리서치 경영진단실장으로 선임한 것은 변화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약화됐던 그룹의 진단기능을 강화해 위기 대처 능력을 강화하려는 이 회장의 메시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내년 2월 이재용 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대대적 변화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현호 사업지원TF 부회장의 연임에서 잘 나타나 있다.

기업에서 인사는 만사(萬事)다. 올해의 인사를 통해 각 기업이 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대차는 혁신과 글로벌화, LG는 안정적 성장, 삼성은 신중한 내실 다지기다. 이러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업은 변하지 않으면 도태하는 생물과 같으며 인사는 그 생명줄이다. 모쪼록 올해 인사가 기업의 성장에 화수분이 되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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