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지역사회 합심해 저녁 돌봄
'좋은 늘봄교실' 소문에 신입생 몰려
충남 논산시 광석면 주민들이 마을학교(늘봄교실)를 운영하면서 폐교 위기에 있던 학교가 되살아났다. 2022년과 2023년 입학생이 각 1명이었던 광석초는 늘봄교실을 실시한 이후 올해 입학생이 32명으로 늘었다. 사진은 올해 6월 학교에서 열린 마을축제. 주민과 학생들이 한데 어울린 한마당 잔치였다. 광석주민자치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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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청에서 북쪽 들판을 가로질러 차로 15분가량 달려야 나오는 논산시 광석면 소재 광석초등학교. 한때 학생 수 1,500명을 웃돌던, 대평원의 풍요롭던 학교였지만 이농현상으로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1999년엔 인근 학교(서광초)를 흡수했지만 학생 수는 계속 줄어만 갔다. 급기야 2022년과 2023년 신입생 수는 1명에 불과했다. 개교 100주년(2029년)을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폐교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즈음, 기적이 일어났다.
“아휴, 말도 마세유. 이리로 전학 보내겠다는 학부모가 줄을 섰슈. 근디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다니께유!”
27일 교정에서 만난 김주현(49) 광석초 교장은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교장은 “2년 연속 입학생이 1명에 그쳐 학교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돌 때, 마을 주민들이 움직이면서 변화가 시작됐다"며 “올해 새 학기 신입생이 32명이었고 전학 온 학생도 8명이나 돼 모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치원생 4명을 포함해 총 28명이던 전교생 수가 올해 56명으로 2배나 늘어난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학교마저 문을 닫으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지역의 위기감이다. 김구(50) 광석초 운영위원장은 "마을학교(늘봄교실)에 우리 주민들이 힘을 보태면 어떨까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주민들이 의기투합했다”며 “아이들을 마을 주민들이 안전하게 돌봐주는 학교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내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2021년부터 늘봄교실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맡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예체능과 학과목을 수준별로 가르친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저녁밥을 차려주고, 통학차량으로 집까지 보내주는 '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늘봄교실 수업은 코딩, 독서토론, 농장체험, 피아노 등 연중 24개 강좌에 달한다. 강사는 김 교장이 직접 면접을 해 채용하는데, 광석면이장단, 주민자치회, 자율방범대, 학부모회 등 주민단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퉈 나온다. 지금까지 연인원 389명이 자원봉사로 참가했다. 논산시와 논산시의회, 논산교육지원청, 건양대, 공주대, 논산백제병원과의 협업 체계도 단단하다. 백제병원은 늘봄교실 참여 학생들을 위해 저녁 7시까지 소아과를 운영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한 몸이 돼 운영하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현재 참여하는 학생 수가 광석초 학생 수보다 많은 80명에 이른다. 광석초 전교생에다 왕전초(5명), 광석중(20명) 등 인근 학교 학생까지 이용하기 때문이다. 늘봄교실 총무인 임채선(42)씨는 “마을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웬만한 시내 학원 프로그램보다 좋다는 소문이 논산시내까지 퍼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광석초 5학년 명수정(11)양은 "야구장에도 가고 딸기농장에서 딸기도 따고, 노는 게 즐겁다"면서 "친구들도 늘봄교실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학생이 참여하는 늘봄교실의 예산 부족 때문이다. 정부의 늘봄교실 예산에 중학생은 배제돼 있다. 광석면 주민들과 광석초 학부모들은 '광석 늘봄교실' 사례를 연구해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에 아이들 소리가 넘치는 것만 해도 좋다”는 김구 운영위원장은 늘봄교실이 마을 인구 증가의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했다.
“늘봄교실 아이들 상당수가 논산시내에서 버스로 통학하고 있어요. 다음 작전은 그 가족들을 이곳(광석면)에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논산= 윤형권 기자 yhknew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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