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논설위원 |
1. 역시 한국 정치는 쉽게 어느 한 편으로 쏠리지 않는다. 한쪽 진영이 금방 무너질 것 같아도 좀 지나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져 희한하게 정국의 균형을 맞추곤 한다. 최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두 개의 재판도 그랬다. 선거법 재판 판결이 뜻밖의 중형이어서 이 대표를 벼랑 끝으로 몰더니, 가장 유죄 가능성이 크다던 위증교사 재판에선 의외의 무죄가 나와 이 대표가 한숨을 돌렸다. 위증교사까지 실형이 나왔으면 야권에서 ‘포스트 이재명’ 논의가 급물살을 탔을 것이다. 물론 이걸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거법 재판 역사상 1심에서 실형이 나왔는데 최종심에서 벌금 100만원 미만(대선 출마 가능 조건)이 된 경우가 전체의 몇 %나 될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확률이 꽤 낮을 것 같다는 심증은 있다. 위증도 맞고, 교사도 맞는데 교사의 고의가 없어 무죄라는 아리송한 위증교사 1심 판결도 상급심에서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어쨌든 민주당은 이 대표의 ‘불사조 신화’를 굳게 믿고 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11월 25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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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보수는 조금만 배가 불러도 정신이 해이해진다. 이 대표의 위증교사 판결이 있던 25일 아침 국민의힘 지도부 회의에서 ‘당원 게시판’ 문제로 친윤계와 친한계의 공개 충돌이 벌어졌다. 한 대표와 한 대표 가족 이름의 작성자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는 당원 게시판 논란은 그 자체가 한심한 수준의 가십일뿐더러 민생 문제와는 아무 상관 없는 정치 놀음에 불과하다. 야당이 파상공세로 정권을 몰아붙일 땐 친윤-친한 충돌이 잠잠하더니 이 대표가 선거법 위반 실형으로 코너에 몰리자 여지없이 계파 갈등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몇 시간 뒤에 이 대표가 위증교사 무죄 판결을 받을 걸 알았다면 여당 지도부가 기자들 앞에서 입씨름할 정신이 있었을까. 아직 정권 임기가 절반밖에 안 지났는데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가라앉았고, 국회에선 거대 야당의 탄핵·특검 공세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한 걸음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인데 집안싸움이나 벌이는 여당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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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법원에 정권 재창출 의존 금물
민생정치로 지지율 올릴 궁리해야
야, 사법 리스크 때문에 탄핵 요원
3. 여권은 법원이 정권 재창출의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는 꿈도 꾸지 마시라. 이재명 대표가 위기라고 저절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오르진 않는다. 설령 이 대표가 유죄 판결로 차기 대선에 못 나온다 쳐도 그게 자동으로 정권 재창출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대선 상대로 이 대표가 나오는 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모호하다. 이 대표는 강력한 마니아층을 보유했지만 심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사람도 많다. 이 대표가 낙마하면 일시적으로 야당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혼란을 딛고 상대적으로 중도층에 더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을 대안으로 낸다면 오히려 어려워지는 쪽은 여당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 국민의힘은 재판 같은 건 잊어버리고 민생 정치에 전념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궁리나 하라.
11월25일 오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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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대통령 탄핵은 요원한 얘기다. 왜냐하면 이 대표가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지기 전에 서둘러 정권을 무너트리겠다는 정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광화문의 정권 규탄 집회도 그들만의 리그가 될 뿐, 일반 국민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보수 진영도 반기문이라는 유력 카드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도 반기문 카드로 정권 재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고 봤기에 당시 새누리당에서 40여 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했던 것이다. 탄핵파들이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때의 학습효과가 너무 강렬해 지금 민주당이 탄핵 표결을 추진해도 의미 있는 여당 이탈표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눈도 오고 날도 춥다. 장외 집회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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